SDC11410.JPG) 교회개척의 출발 배경 2005년 10월, 대전에서 담임으로 섬기던 교회를 사임하고 아무런 대책 없이 인천에 교회를 개척했다. 사실 인천은 아픔의 장소였고 실패의 자리였다. 이전에 개척을 하였다가 둘째 딸이 백혈병 진단을 받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께서 “실패한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라”라는 마음을 주셨다. 내 딸은 그 어린 나이에 천국을 확신하는 분명한 신앙고백과 함께 의료선교사의 꿈을 다 이루지 못하고 주님 품에 안겼다. 그리고 남겨 놓은 치료비 1000만원, 그것이 교회의 보증금이 되었다. 이렇게 애절한 마음으로 개척을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다. 6개월이 지났는데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다 주일학교 학생 한 명이 참석했고 바로 이어 선교사님 한 분이 참석하셨다. 당시 아프리카 베냉에서 사역하시다가 질병으로 인해 귀국하게 되셨고, 영육이 연약해진 가운데 함께 예배 드리게 되었다. 또 다른 분은 중국 S성에서 오랫동안 사역하시다가 안식년으로 나와 계시는 선교사님이셨다. 이 분은 영적침체를 겪고 있었다. 그 때 우리는 선교사님들이 우리와의 교제를 통해 영육 간에 회복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했고, 교회가 그 통로로 사용받기를 기도했다.
후원으로부터 시작된 선교 이듬해, 감사하게도 두 분 모두 중국으로 파송되었다. 성도교회는 당시 주일학교 10명 가량 모이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우리는 선교사 후원을 시작하였다. 선교는 선교사님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도체와 함께 선교해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중국 S성에 매년 1-2회 단기선교를 갔다. 교회가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비난도 적지 않았다. 방과 후 교실을 무료로 개설하자, “차라리 학원을 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 교회나 제대로 할 것이지 무슨 중국선교냐”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셨다. 하지만 나는 나를 사랑하시고 걱정하셔서 해 주시는 말로 받아들였다. 포기할 수 없는 선교의 열정으로 단기선교를 마치고 오면 교회의 재정은 제로가 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한 번도 우리를 굶기지 아니하시고 월세 한번 밀리지 않게 하셨다. 그 때 파송된 선교사님께서 4년간의 사역을 마치고 안식년으로 잠시 들어오셨다. 주님이 하셨습니다!
단기선교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 2007년부터 계속된 S성 단기선교는 주로 가정교회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총체적 복음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었다. S시에 있는 가정교회들을 순회하고 또 시골지역들을 방문하며 복음을 전하는 일은 참으로 은혜롭고 보람된 일이었다. 특히 선교사님과의 영적 교제와 팀워크가 잘 이루어지다보니 복음 또한 자유롭게 전할 수 있었다. 통역이 매끄럽게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단지 말이 잘 통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곧바로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사역을 진행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가정교회들과 시골지역을 쉬지 않고 방문하는 일정들은 고단하고 피곤했다. 짧은 관광 일정마저 허락되지 않았다. 한 번은 시골지역을 방문할 때, 버스를 타고 오랜 시간을 간 후에 또 걸어서 한참을 가야만 했다. 그리고 1박을 하며 복음을 전한 후 돌아가는 길에는 함께 한 우리들에게 오토바이를 태워주었다. 특별한 강사 접대라고 했다. 오토바이 뒤에 타고 달리는 그 기분이란! 일반관광이나 놀이공원에서 느낄 수 없는 하늘의 기쁨과 감격이 있었다.
느헤미야 중보기도 사역 작년 11월, 일주일 간 뜻 깊은 사역의 기회를 가졌다. 사역을 위한 준비로 인천 지역 몇몇 교회 연합 ‘말씀기도’ 모임을 가졌다. 그리고 주님은 내게 창세기 12장 1-2절의 말씀을 허락하셨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또한 주님은 내게 세상의 가치, 인간 중심의 가치를 떠나 말씀대로 순종하며 마음을 같이하여 동역할 4명의 군사들을 허락하셨다. 거의 두 달간 일주일의 사역을 위해 매 주일 저녁 3시간씩, 때로는 꼬박 밤을 새며 기도하였다. 그러자 이런 말도 들려왔다. “아니 한 주간 다녀오는 사역인데 이렇게까지 시간을 드려야 합니까?” 그 때 주님은 우리 팀의 이름이 ‘전심(全心)’팀임을 다시 한 번 기억하게 하셨다. 실제 일주일 간의 사역을 마친 팀원 모두는 마치 한 달을 보낸 것 같다는 고백을 하였다. 사역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한 팀원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모두 열방으로 나아갈 기세가 충천하였다.
일주일의 짧은 사역 일정 가운데 우리 팀은 48시간 연속기도를 시작했다. 일명 느헤미야 기도이다. 기도는 사역 시작하기 전에 하는 것이지 이곳까지 와서 그 아까운 항공료와 시간을 드려야 하는가 생각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 팀은 이렇게 고백했다. “공항에 도착한 직후부터 일주일 간 기도만 하고 돌아온다 할지라도 너무 감사한 일이다.” 더군다나 48시간의 기도는 한 시간 단위로 하나님 나라 부흥과 선교 완성을 위해 열방을 품고 기도하는 기도였다. 내 자신의 문제, 내 교회, 내 사역에 국한된 기도회가 아니었다. 처음 한 시간의 기도를 마친 선교사님은 이렇게 고백했다. “무뎌진 기도의 무릎을 다시 꿇게 되어서 너무나도 감격스럽네요. 그런데 이렇게 48시간 계속하는 겁니까?” “예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기도하는 것을 지켜만 보던 선교사님들 위에 회개의 영이 부어졌다. 밤을 새며 연속기도가 이루어졌다.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부어지는 시간이요, 기도의 능선이 구축되는 시간이요, 침체된 영혼이 소성함을 받고 일어서는 시간이었다.
대학과 불교, 도교 사원들을 차례로 방문하며 중보하였다.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그 땅을 밟으며 찬양하였다. “내가 밟는 모든 땅이 주를 예배하게 하소서. 주의 보혈로 덮어지게 하소서. 내가 선 이 곳, 주의 거룩한 곳이 되게 하소서. 주의 향기로 물들이소서.” S대학을 방문했을 때, 하나님께서 특별한 감동을 주셨다. 대학 시절, 예수님을 만나 개인전도와 양육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이후 목사 또는 선교사로 헌신한 이들이 나왔던 것이 기억났다. 다시금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졌고 계속하여 복음 사역에 전념할 것을 다짐하고 결단했다. 이후 짧은 일정으로 가정교회들을 방문하며 하나님의 마음으로 열방을 위해 기도했다. 주님의 마음으로 드려지는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지 다시 깨달았다. 반면 기도 없는 사역은 두 가지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생명이 없는 사역은 결코 생명의 역사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과, 그것이 성공적인 사역이 된다면 철저히 사람의 영광이 될 뿐이라는 것이다. 이번 사역 중에 지체들과 함께 ‘말씀기도’ 모임을 가질 때,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신 말씀이 있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7-8) 기도하면 사랑하게 되며, 사랑의 동기는 기도가 되어야 함을 말씀해 주셨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심 우리 교회는 주일을 제외한 6일 144시간을 한 시간 단위로 나누어 교회를 박해하는 국가와 미전도 종족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놀랍고 감사한 일은, 이 기도 기간 중에 지난 가을 S대학을 밟으며 기도한 제목들이 응답을 받은 것이다. 그것은 S대학의 교수 한 분이 건국대 교환교수로 오셔서 수요예배에 참석한 것이다. 한국어를 전혀 못하지만 통역을 통해 함께 교제하며 복음을 통해 이루신 일들을 서로 나누었다. 그리고 이 한 분의 교수를 통해 중국의 학생들에게 복음이 전해질 소망을 갖게 되었다. 연약한 자들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은 자신의 전능을 드러내시며 영광을 받으심을 다시금 경험하는 복된 시간들이었다.
이흥범 | 성도교회 담임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