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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6.30 통권 126호     필자 : 최의헌 프린트   이메일 
[선교사역과 건강관리]
인간 이해와 선교사의 정신건강 관리

인간은 7세 이전의 발달을 이후의 인생에서 반복한다는 성격심리이론을 통해 우리 자신과 인간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두 번째 발달 시기와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첫 번째인 만 0~1세의 시기가 인격이라는 집의 기초에 해당한다면, 두 번째인 만 1~3세의 시기는 집의 기둥에 해당한다. 기초와 기둥은 지반의 위, 아래에 있으면서 집의 기본적인 골격을 잡아준다. 마찬가지로 첫 번째 시기와 두 번째 시기 모두 인격 형성의 가장 중요한 골격인데, 첫 번째 시기가 더 기본이 되고 바탕이 되며, 두 번째 시기는 보다 가시적이다. 우리가 "저 사람 성격이 어떻다" 고 말하는 표면적인 특성은 주로 두 번째 단계에 의해 좌우된다. 왜냐하면 두 번째 단계에서 대인관계의 특성이 세워지기 때문이다.

자율성 형성의 중요한 시기
실제 그 나이의 아이로 보면, 아이는 만 1세가 되면서 걷고 말하게 된다. 능동적으로 엄마를 벗어나 자기 나름대로 주변을 탐색할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온전히 엄마를 벗어날 수 없으며, 몇 발짝 못 가서 엄마가 어디 있나 뒤돌아보며 엄마의 존재를 확인한 후에야 탐색을 재개하게 된다. 이 시기에 엄마가 아이에게 하는 말은 정말로 많지만 크게는 "해"와 "하지 마"  둘로 나뉘게 된다. 이러한 행동 조정은 "대소변가리기" 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잘 거치면 아이는 만 3세가 되는 시점에서 이제 엄마를 벗어나서도 꽤나 버틸 수 있으며, 유치원에서 엄마와 떨어져 시간을 보낼 수도 있는 세 번째 발달 시기로 넘어가게 된다. 발달학자 에릭슨은 두 번째 시기를 잘 보내면 자율성(autonomy)이 형성된다고 하였으며, 이것은 곧 심리적인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두 번째 발달 시기를 잘 보내지 못하면 자율성의 형성이 실패를 가져오게 된다. 자율성이 실패되면 무엇이 나타날까? 자율성의 반대말은 타율성(passivity)이니까 타율성이 정답인가? 한 편으로는 맞다. 그런데 에릭슨은 자율성 형성이 실패하면 수치(shame)가 나타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타율성과 수치는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미 설명한 1~3세의 아동이 그 시점에 어떤 경험으로 어떤 심리적인 부분을 세우는지를 잘 고려해야 한다.

 

두 번째 시기의 특성
두 번째 시기의 아이는 우선 엄마로부터 분리되고 개별적이며 독립적인 존재로 서는 과제를 갖는다. 이 과제가 성취되지 못하면 그는 평생 상징적인 엄마의 조정을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 대표적인 양상이 "노예근성"이라 할 수 있겠다. 자율성을 존중하는 상사 밑에 있으면서도 감시와 지배 아래 있는 사람인양 살며 심지어 누가 통제하지 않는데도 스스로는 누군가의 통제와 억압을 받는 것처럼 산다. 이런 심리에서 흔히 나타나는 감정은 무력감과 억울함이다. 뚜렷한 이유 없이 혹은 사소한 것에 반응하여 과도한 무력감이나 울분이 올라온다.

두 번째 시기의 아이가 갖는 또 하나의 특징은 극단성이다. 다양성은 세 번째 발달 시기가 되어서야 가능한 주제이다. 극단성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압력을 받는 상태이다. "있다" 혹은 "없다", "좋다" 혹은 "나쁘다" 이다. 다양성은 없으며 중간의 애매한 상태를 허락지 않는다. 이 시기 아이들이 보는 만화의 캐릭터가 대개 양극단 중 하나로 구성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다시 "수치(shame)" 라는 감정을 생각해보자. 한국의 문화상 "수치"라는 단어는 "창피하다" 라는 단어와 동의어처럼 사용된다. 어린아이가 목욕하려고 할 때 엄마는 아이에게 장난치듯 "아이, 창피해" 라고 말한다. 에릭슨이 말하는 수치는 그런 창피함이 담겨있기도 하지만 그보다 근원적이다. 아이가 잘못한 것을 엄마가 핀잔을 준다고 가정해보자. 아이는 자기 잘못을 지적받기 때문에 창피할 것이다. 하지만 에릭슨이 말한 수치 수준은 아니다. 그 엄마가 아이를 끌고 나가 동네 한 가운데 세워놓고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혼을 낸다고 가정해보자. 아이가 그저 창피할 따름일까? 그 이상일 것이다. 아이의 잘못이 노출되는 건 마찬가지 이지만 그마나 가질 수 있는 보호막이 없이 완전 노출되는 것이므로 아이의 감정은 바닥을 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에릭슨이 말하는 "수치" 이다. 감정의 양극에서 한 쪽 끝이라는 뜻이다.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 군중 앞에 끌려나온 여인이 느끼는 감정이 바로 이것이다. 병적인 우울증은 이와 흡사하다. 감정의 바닥을 보이는 것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불충분감(inadequacy)이라는 감정도 이와 비슷하다. 이런 감정은 적절한 묘사도 잘 안 된다. 자기의 존재 가치가 없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지, 혹은 어울리지 않는 곳에 놓여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그러한 불충분감이 있으면 자신감은 고사하고 자기감도 없어진다.

감정의 극단성은 분열(splitting)과 양가감정(ambivalence)으로도 나타난다. 분열이라는 심리용어는 흑백논리라는 개념과 흡사하다. 모든 것을 극단적인 둘로만 나누다보니 감정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한 사람을 두고 한 번은 무조건 좋다고 보다가 나중엔 무조건 나쁘다고 거부한다. 비단 다른 사람을 향한 것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그럴 수 있다. 양가감정은 양극단의 감정이 "번갈아"나오는 게 아니라 "한꺼번에 같이" 나온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형언하기 어렵고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주저함(hesitation)을 보인다.

두 번째 시기의 아이가 갖는 세 번째 특징은 아이는 오로지 엄마에게만 집중한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직 다양성을 모르고 극단성의 수준에만 머물러 있는 아이이기 때문에 다양한 대상을 소화해낼 수 없다. 그래서 오로지 엄마뿐인 것이다. 이 시기의 아빠, 할아버지, 형제는 아이에게 있어서는 모두 엄마의 분신, 즉 엄마2, 엄마3, 엄마4가 될 뿐이다. 여기서 말하는 엄마는 혈육상의 엄마가 아니라 "주 양육자" 를 말한다. 아이는 다양한 대상을 신경 쓸 역량이 없다. 오로지 엄마에게만 승부를 걸며 거기서 독립이라는 최종목표를 달성해야만 한다. 모든 대인관계는 이러한 "엄마와 아이"라는 양자관계에 기초하며, 여기에서 성격이 만들어진다. 중요한 한 사람만이 특별히 의미 있는 발달 시기이므로, 이 시기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그 중요한 한 사람에 의한다. 개인에게 인간관계는 무수하고 다양하지만 그에게 진정한 스승 혹은 닮고 싶은 인물은 손에 꼽을 것이다. 두 번째 발달 시기에서 어려움을 겪고 그로 인해 삶 가운데 상담이나 치료를 필요로 할 때, 이러한 내담자는 한 두 명의 치료자나 멘토에게 집중하는 것을 보게 된다. 치료자의 입장에서 이런 내담자를 만나는 것은 한 편으로는 기쁘고 한 편으로는 부담이다. 그가 나를 제 2의 엄마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니 개인으로서는 가치 있는 일인 반면에, 나의 태도 및 치료에 따라 그의 인생이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책임과 부담을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할을 자주 맡는 직업인으로는 교사, 목회자, 의사 등이 있다.

 

양육자의 중요한 역할 - 일관성
1~3세의 발달 과정은 한 마디로 인간관계의 기초이다. 이 시기의 결정적인 역할은 주 양육자인 엄마와 아이와의 교류에 있다. 엄마는 다양한 방법으로 아이가 심리적인 자율성을 획득할 수 있게 하며 양극단의 사고 체제에서 그 다음 시기로 성장하게 한다. 이 시기에 문제가 있으면 앞서 언급한 여러 문제들 중 어느 하나 혹은 여러 가지가 이후의 인생에서 반복될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마치 1~3세 시기로 돌아가서, 제대로 심리적 성장을 거쳐보는 것처럼 성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제 2의 엄마인 멘토 혹은 상담자가 필요하다. 만약 당신이 어느 누군가의 제 2의 엄마가 된다면 비록 부담스럽고 책임이 따르지만 잘 감당하기 바란다. 이 시기에서 엄마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일관성(consistence)" 이다. 그런데 꾸준히 한결같은 사람은 없다. 심리치료에서도 일관성은 치료자의 인성으로 마련되는 게 아니라 치료환경의 구조를 통해 세운다. 신앙에서도 지도자는 자기 인격으로 사람을 감화할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일관성을 대신 비추어야 할 것이다.


최의헌 | 연세로뎀정신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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