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항물가놀이 030.jpg) 물가 놀이터에 가기까지 매번 그렇지만, 그 날 아침은 유난히 시간을 다그치며 집을 나섰다. 어깨 가득 짐들을 짊어지고, 20여 분을 걸어 중국인들과 약속된 좁고 비탈진 곳에 도착했다. 그 번잡한 곳을 굳이 약속 장소로 잡은 것은 ‘쉬’의 집이 그 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17세를 갓 넘긴 꽃 같은 나이에 쓰러져, 20년의 세월을 일그러진 채로 그 비탈진 곳에서 살아오고 있었다.
잠시 후, 배불뚝이 ‘리씬’이, ‘물가 놀이’를 위해 미리 예약해 놓은 중형 버스를 타고 짐짓 늠름하게 가파른 길을 올라온다. 한 번도 늦은 적 없는 ‘쟝’ 교장이 오늘은 두 딸과 아내를 특별 손님으로 초대해 데리고 오느라 헐레벌떡 뛰어온다. 18명이 다 모이니, 마치 참새가 방앗간에 모인 듯, 버스를 뜨겁게 달구었다. 회색 도시를 성큼 벗어나자 버스 안은 저마다의 고린내가 풍기며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 재미에 겨워 방정을 떨던 ‘따이’는 웃음을 참느라 신음했다.
그때, 깔깔거리는 웃음 사이로 갑자기 가느다란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쉬’였다. 곧 그치려니 했지만 흐느낌은 통곡으로 변했다. 누구보다도 아내가 당혹해 했다. 허겁지겁 ‘쉬’ 옆으로 자리를 옮긴 아내 보기가 민망하다. 오늘이 있기까지 아내가 쏟은 피와 땀이 얼마인데, 초장부터 파장 분위기라니. 나는 숨이 콱 막혔다. 그러나 한술 더 떠 나를 헷갈리게 한 것은 통곡하는 ‘쉬’를 안고 좋아 죽겠다는 양, 헤 벌린 입으로 히죽거리며 웃는 아내의 모습이었다. 아내로부터 사정을 조목조목 듣던 모두가 길고 편하게 숨을 내쉬었다. ‘쉬’가 예상치 못한 소나기와 난데없이 떨어진 폭탄같이 큰 사랑을 아내로부터 받으니 행복에 복받쳐 우는 것이란다. 장애를 천형(天刑)인 듯 속절없이 끌어안고 홀로 된 노모와 살아오며, 낯이 깎이고 아니꼬운 일을 체념하듯 받아들이고 살아왔던 모녀가 아니었던가. 사람들의 곱지 않은 진득한 시선이 창피해 숨도 못 내쉬고 참아 왔던 ‘서러움 한 덩이’, 그게 통곡이라는 카타르시스로 터져 나왔던 모양이다.
버스가 좁은 시골길을 휘휘 돌아 물가 놀이를 하기로 작정해 둔 곳에 도착했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버스에서 내렸다. ‘물가 놀이’라는 말은 전화로 ‘세례 어쩌고…….’ 하면서 말할 수 없어 세례를 준비하면서 만든 우리 끼리만의 암호였다. 전에는 여관을 빌려 욕조에서 침례를 했는데, 이번 참엔 마음을 다 잡고 아예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며칠 전에 덜컥 찾아 온 차가운 초가을 날씨에 모두 기가 죽어 있었는데, 우연치고는 정말 거짓말 같은 따뜻한 바람이 기뻐 뛰는 우리 일행들을 진작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큰 아들 녀석이 떡 벌어진 어깨로 ‘쉬’를 업고 앞장을 서고 우린 꽁무니를 따라 줄줄이 가파른 계곡 밑으로 더듬거리며 내려갔다. 물은 생각 보다 깊었고 경사가 심했다. 기도가 절로 나왔다. 한참을 휘젓고 다닌 끝에 적당한 곳을 찾았다. 묶어 놓은 배에 모두 올라 우선은 진을 쳤다. 육자배기 한가락 뽑듯 찬양하고, 세례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일장 연설을 했다.
물가 놀이터 속으로 ‘쟝’이 제일 처음으로 물 안으로 들어 왔다. 복음에 반응하고 선교사인 나보다 더 열심인 아름다운 청년, 그래서 늘 고마운 청년. 그리고 육십을 훌쩍 넘긴 ‘리’, 평생 회교를 섬기다 자폐증을 앓는 아들의 장애를 꺽꺽거리는 아픔으로 끌어안고 살아오다, 더 이상 무너져 내릴 수 없는 연약한 무릎으로 주님 앞에 선 배불뚝이 아비. 물 속에 그를 잠기게 하고 막 일으키던 순간, 내 목청이 갑자기 치솟으며 울컥했다. 그러나 왠지 울음을 토해내는 것이 어설플 것 같아 침을 애써 꿀꺽 삼켜 진정시켰다. 다음 차례는, 평생 한(恨)을 먹고 살아 왔던 그의 아내 ‘이’.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원통함을 부둥켜안고 살아오다 주님을 만나 이제는 동역자가 된 어여쁜 숙녀 ‘헝’. 영화에서나 봄직한, 천사보다도 아름다운 미소를 날리며 물 안에 들어 선 ‘쉬’의 어미 ‘티엔’. 라틴 댄스에 인생을 걸고 살아오다 주님을 만난 딸 같은 ‘따이’.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듯 흉측한 장애를 얼굴에 달고 사는 묘족 소녀 ‘콩챵’. 그녀로 인해 그 씨족 마을 역사에 처음으로 선포된 원색적 복음. 마지막으로, 물이 무서워 배에서 기다리고 있던 ‘배불뚝이’와 늘어지는 몸을 가눌 수가 없어서 배 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쉬’. 응어리져 맺힌 것을 풀지 못해 억울하고 분한 가슴으로 살아 왔던 그들. 두 마리 암탉을 잡아 왕자처럼 점심을 즐기고는 고즈넉한 계곡 자락이 내려다보이는 조그만 밭두렁으로 다시 하나 둘씩 모여 들었다. 그리곤 몇몇이 저 산자락 너머에다 대고 괜히 고함들을 꽥꽥 질러 댄다. 아내는 집에 돌아 와서 눈물을 훔치며 며칠을 킥킥거렸다.
편지 한 통 세례 받고 오래지 않아, 콩챵은 그 거추장스러운 혹을 떼어 내고 싶어 중국 시골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수술 도중 콩챵은 홀연히 천국으로 떠나 버리고 말았다. 황망히 그를 보내면서 그리움에 사무쳐 글을 적었다.
콩챵! 어여쁜 콩챵아, 누구보다도 아름다웠던 나의 딸 콩챵아, 숱한 고통 속에서도 곱디고운 마음씨를 가졌던 콩챵! 그 마음처럼 따듯하고 보드라운 목소리를 가졌던 콩챵아!
이젠 너의 그 어여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가 없구나. 곱디고운 그 목소리를 어디서도 들을 수가 없게 되었구나. 미안하다. 네가 세상을 떠났다는, 가슴이 무너지는 먹먹한 소식을 듣고 아내와 내가 통곡을 쏟으며 외쳤던 외마디는 ‘미안하다……. 미안하다’라는 말 뿐이었다. 어떻게든 너를 중국에서 데리고 나와 수술을 받게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고, 당 간부의 집요한 방해가 있었어도 어떻게 하든 너를 데리고 나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
너를 사랑한다 했지만, 너를 향한 우리의 사랑이 집요하지 못했구나. 미국 의사들도 선뜻 나서지 못했던 수술이었는데……. 작은 시골 도시의 사기꾼 의사들이 수술한다 했을 때, 기어코 못하게 했어야 했는데……. 끝내는 너를 그 조잡한 수술대에 올려놓게 했구나. 수술이 결정되었을 때, 아내가 그 18시간의 먼 길을 떠나,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너에게 가야 할까 고민할 때, 아내와 같이 너를 보러 가야 했었는데 그러지도 못했구나.
콩챵, 너의 아빠가 아내에게 전화했다. 네가 죽어, 너의 몸을, 이미 마을 뒷산에 묻고 내려 왔다고. 아내는 전화를 붙들고 통곡을 쏟아 놓기 시작했다. 이제는 어디서도 어여쁜 너를 다시 만날 수도, 어디서도 너의 그 고운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도 없게 된 것이 너무나 원통해서 오열하며, 너의 고운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 목이 쉬도록, 꺽꺽거리며 전화를 붙잡고 목을 놓아 울고 또 울었다. 도무지 가슴이 먹먹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우리의 안방에 붙여 있는 너의 환하게 웃는 고운 사진을 보며 며칠 동안, 쏟아지는 눈물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너의 어여쁜 사진을 정성스럽게 어루만지며, 눈이 벌긋토록 며칠을 울고 또 울었다. 설날 지나고 너를 이곳으로 데려 오기로 작정하고, 네가 살 집도 이미 모두 알아 두었는데……. 너에게 주려고 필립스 라디오를 기어코 아껴 두었는데……. 잉그리드 아주머니를 통해 네가 일할 곳도 모두 정해 두고 네가 오기만을 기다렸는데…….
콩챵, 기억나겠지? 내 설교를 알아듣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네가 옆에서 너희 마을 방언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설명해 주었지. 내가 한마디 설교하면 너는 두 세 마디 말로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 주었고. 선교사인 나보다 더 열심히. 소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던 너였지만 그때 너의 모습은 박사님보다도 훨씬 멋져 보였단다.
콩챵아, 춤을 추어라. 하나님은 성도의 죽음을 귀하게 본다 하셨으니 춤을 추어라. 팔다리를, 어깨를, 궁둥이를 앞뒤 좌우로 흔들며 그곳에서 주님과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추어라. 항상 머리에 쓰고 다녔던 모자를 벗어 던지고 까르륵 까르륵 웃으며 신명나게 춤을 추어라.
나의 사랑하는 콩챵아, 너를 그곳에서 다시 만나면 나하고도 춤을 추자. 아무 인사말도 말고 너의 불거져 나온 왼쪽 눈에 입맞춤하고, 너풀너풀 팔다리를 이리저리 놀리며, 어깨를 우쭐거리며 덩실덩실 춤을 추자. 지칠 때가지, 지쳐서 그만 둘 때까지……. 쿵덕덕 쿵덕덕, 손을 맞잡아 손깍지를 끼고, 쿵쿵 짝짝, 까르륵 까르륵 춤을 추자. 나의 사랑하는 딸, 어여쁜 이름, 이제는 그리움이 된 콩챵아! 천국에서 만날 그 날을 기대한다.
김핑남 | 중국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