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땅으로 크리스마스를 한국의 파송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보내고 다음날 바로 가족과 함께 사역지로 떠나게 된 것이 벌써 5년 전 일이다. 겨울이라 춥기도 했지만 낯선 곳에 많은 짐을 가지고, 결정된 집도 없이, 아내와 어린 딸을 데리고 떠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밤늦게 시내에 도착하여 학교 게스트 하우스로 가기 위해 택시를 두 대 잡았다. 짐을 다 내리고 숙소에 짐을 푸는데, 갑자기 우리를 태워 내려주고 간 택시 기사가 다시 돌아 왔다. 택시 안에 실어둔 기타를 내리지 않아 다시 돌려주기 위해서 왔단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중국에서 이미 몇 년 지낸 경험이 있지만 이런 일은 극히 드물다. 잃은 물건을 찾으려 해도 찾기 어려운데, 먼저 손님의 물건을 찾아주기 위해 다시 돌아왔다니. 이 일은 우리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였다. 이 택시 기사를 통해 아직 낯설고 두렵기만 한 G성에 온 우리 가정을 잘 왔다고 환영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이 땅을 더 사랑하도록 우리 마음을 열게 하셨다. 그렇게 사역지에서의 첫날을 감사함과 기쁨으로 시작했다.
우리 가정이 가장 먼저 할 일은 정착할 집을 알아보는 일이었다. 지인 하나 없고, 정보도 없는 곳에서 시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개척을 해 본 사람만이 안다. 집을 어떻게 구할까 생각하다가 학교에 한국 유학생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바로 학교로 찾아갔다. 학교에서 만난 유학생 한 명을 통해 부동산 중개인을 만나게 되었고 우리에게 꼭 맞는 집을 구하게 되었다. 사실 우리가 구한 것은 새로 지은 아파트였는데, 정식 입주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아파트는 거의 황량한 들판과 같은 분위기였다. 우리가 손에 꼽을 만큼 빠른 순서로 이곳에 살게 되었다. 더욱 감사한 것은 이런 상황 속에서 집주인이 6개월 전에 집안 장식을 다 해 놓은 것이다. 중국에 생활해 본 분들은 알지만 원래 중국 아파트는 아무 것도 없고 이사를 오는 사람이 장식을 다 해야 한다.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집 주인은 자신들이 살려고 그렇게 했다가 변경이 되어서 우리가 비교적 싼 임대료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 집에 들어가면서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찬양했다. 사역기간 동안 우리는 한 번도 이사하지 않았고, 집주인과 아주 친밀한 관계로 발전해 월세도 다른 집보다 훨씬 싸게 살 수 있었다. 마지막 날 한국으로 오기 전 만났던 주인과 그 외할머니 모습은 정말 잊을 수가 없다. 짐을 다 빼고 이사 올 때보다 더 깨끗하게 정리를 해 둔 상태에서 집주인을 만나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할머니께서 우시는 것이었다. 이렇게 귀한 인연으로 함께 했는데 언제 다시 볼 수 있겠냐고, 아쉬워하면서 작별 인사를 하셨다.
12월 말에 새로운 사역지로 옮기게 되었고 마침 방학이라서 우리는 이 시간을 지역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으로 삼았다. 주로 식당에서 밥 먹다가, 길을 묻다가, 때로는 우리의 의도적인 접근을 통해 친구들을 알아갔다. 그러던 중 우리와 똑같은 사역을 이미 하고 계시는 몇몇의 다른 선생님 가정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G성 L시에는 소수민족이 다른 곳보다 많아서 소수민족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분들도 있었다. 사역자 가정이 여럿 있어서 딸아이의 연령과 비슷한 또래 한국친구들도 만나게 되었다. 선교지에서 아이들의 정체성 형성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셨다는 생각에 참 감사했다.
개학을 한 후에는 한국어를 배우려 하는 중국 친구들과 교제하면서 자연스레 더 많은 친구들을 알아가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부활절을 친구초청 전도 및 교회개척을 위한 첫 예배모임이 되도록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만나서 알게 된 친구들을 모두 초청하기로 했다. 그들은 교회에 다녀본 적이 없었기에 부활절의 의미도 몰랐지만 모두 오겠다고 대답했다. 몇몇 친구들과는 노래와 율동으로 연습을 하고, 부활절 계란을 삶아 예쁘게 그림도 그리고 포장도 했다. 그러나 아직 교회배경이 없는 이들에게 어떻게 신앙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가까이에 사시는 다른 선생님의 모임에 나오는 한 자매가 위해 간증을 해 주기로 했다. 그 자매는 그날 모임에 와서 친구들에게 어떻게 예수님을 알고 믿게 되었는지, 그리고 삶이 어떻게 바뀌게 되었는지를 간증해 주었다. 이렇게 부활절기념 예배 및 개척예배를 시작으로 황무한 서북 땅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또 하나의 모임이 시작되었다.
연합하는 아름다움 이곳에서 내가 느낀 것은 사역자끼리의 연합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많은 사역자들이 보안과 자신의 사역의 노출을 원치 않는 이유로 연합하기를 꺼려한다. 대부분 보안을 핑계대지만, 사실 많은 사역자들은 이기적인 마음과 경쟁심 때문에 잘 연합하지 못한다. 나는 이곳에서 사역하는 동안 사역자들 간의 아름다운 연합과 섬김을 보고 배웠다. 특히 나와 가까이 계시는 몇 분 선생님 가정과는 교파도, 파송단체도 다르지만 자신의 사역을 공개하고 정보를 공유하면서 깊이 협력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아직 모임이 안정이 되지 않았을 때에는 수련회를 가져, 연약함을 메우고 뜨거운 마음을 함께 나누었다. 세 가정교회가 모여 세례식도 함께 했다. 각 가정교회에서 세워진 리더들은 서로 아픔을 나누고 위로하며 격려하는 사이가 되기도 했다.
사역지에 늦게 온 내게 이 분들과의 연합은 많은 도움과 힘이 되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둘째가 태어날 때였다. 두 달을 먼저 나와 미숙아로 태어났다. 계속되는 병원에서의 극단적인 진단은 우리의 마음을 너무나 낙담케 했지만 주위 한국 사역자들의 섬김은 그 어려움을 넉넉히 이기게 했다. 열흘 정도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그곳에 있는 사역자들이 모두 오셔서 기도해 주셨다. 특히 중국 병원은 식사가 제공되지 않는데, 그 사역자들이 돌아가면서 열흘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 끼마다 맛있는 식사를 준비해 주셔서 아이와 아내 모두 건강하게 퇴원할 수 있었다. 그때의 기도와 관심은 아픔과 절망으로 벼랑 끝에 선 것 같은 우리를 다시금 하나님 앞에서 든든히 서게 하는 힘이 되었다. 지금은 많은 분들이 더 큰 사역을 위해 각기 흩어져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동역자로 교제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서로 격려하고 있다.
일꾼을 세움으로 온전케 되는 하나님 나라 내가 있던 지역은 중국내에서도 서북지역에 속하며 경제적으로도 매우 낙후된 곳이다. 이곳의 대학생들은 가난한 농촌출신의 학생들이고 대도시의 학생들보다 상대적으로 순박하고 순수하다. 교회를 개척하고 6개월이 지날 즈음, 약 10명 정도의 학생들이 모임에 꾸준히 나오게 되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제자훈련에 주력하였다. 필자의 경험으로, 대학시절 영적 아버지로부터 배운 바 말씀의 중요성을 알기에 온 힘을 다해 전하고 가르쳤다. 그들은 빠른 이해력으로 잘 따라 주었다. 그 결과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하나님은 이들이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말씀과 기도를 통해 교제하는 법을 배울 뿐 아니라 믿는 자들이 함께하는 교제의 기쁨을 알아 함께 하기를 사모하게 하셨다. 나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생명이 자랄 때만 가져오는 기쁨과 행복을 맛보았다.
훈련 과정에 매년 두 차례 단기 선교 일정이 있다. 방학을 이용해 다른 지역으로 가서 복음을 전한다. 이것은 그들로 다른 소수민족에 대한 부담감을 갖게 할 뿐만 아니라, 이들이 바로 자신들이 품어야 할 전도의 대상이라는 것을 알게 하려는 목적이 있다. 특히 이 여행 때에는 다른 지역에서 사역하는 선생님들의 제자들이 함께 참여하기에 교제를 통해 서로 도전을 받게 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한번 단기를 다녀온 친구들은 전도와 선교의 현장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됨으로 열정적이고 역동적인 신앙을 가지게 된다. 조금씩 선교에 대한 부담감이 마음 한 켠에서 싹 트는 것도 볼 수 있다.
2년의 시간이 흐르자 전임 사역자로 헌신하는 이들이 나오게 되었다. 이제까지 흑암 가운데 살다가 빛 되신 예수님을 만나 생명의 삶을 살게 된 그들이 주 앞에서 우리처럼 복음을 위해 일생을 드리겠다고 헌신했다. 이들에게는 헌신의 삶을 다 이해할 수 없어 반대하는 가족에 대한 십자가의 아픔이 따르게 된다. 그런 중에도 제자로 살기를 원하는 이들을 중국에 있는 신학교에 가서 공부하게 했다. 나의 첫 번째 사역 기간에 헌신한 리더들 중에서 한국에서 신학과정을 공부한 이들도 있어서 한국에 가서 공부를 하는 것도 고려해 보았지만, 중국에서 중국교회를 섬기기 위해 중국적 토양 위에 더 많은 가정교회 사역자들의 사례를 보고 배울 수 있는 중국 신학교를 선택했다.
한 자매는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는데 형제와 함께 이슬람지역에 대한 선교를 꿈꾸고 있다. 사방을 돌아보아도 도무지 나무라곤 볼 수 없는 자연환경, 온통 눈에 보이는 건 모스크와 흰 모자를 쓴 회족들이 가득 찬 곳. 이러한 땅에서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이 오고, 주를 경배하는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요원(遙遠)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그 땅의 현실을 보고 꿈꾸고 소망하기보단 좌절하고 절망할 때가 많았던 것 같다. 하나님을 잊었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잊었기 때문인 것을 고백한다. 어느 해 겨울에 유학생 몇 명과 어린 딸을 데리고 교회 자매의 고향을 찾아 간 적이 있었다. 자매의 고향을 찾아가는 길은 너무나 멀고 험했다. 그 지역은 전형적인 서북의 황토 고원의 장엄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살기에는 지극히 불편한 조건이었지만 그 땅을 보면서 꿈을 꾸었다. 그 넓게 드리워진 황폐한 고원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온전히 높이고 경배하는 흰 옷 입은 주님의 백성들의 모습을, 그리고 그 땅의 주인은 유일한 하나님 한 분인 것을 선포하는 모습을 보게 되기를. 인간적으로 보기엔 너무나 요원하고 이룰 수 없는 꿈 같지만, 주께서 우리에게 보게 하시고 꿈꾸게 하신 것이다. 주님과 함께 황폐하고 소망 없는 그 땅에서 주님이 꾸게 하시는 꿈을 꾸며, 주께서 친히 이루어 나가실 그 일을 기대한다. 주께서 다시 오실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순종으로 아버지 앞에 나를 드리며 중보하며 살기를 소망한다. 이바나바 | 중국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