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실로 살아계신 하나님은, 그의 두 손으로 당신을 잡아 주길 원하십니다. 길고 긴 밤 당신과 함께 걸으며, 당신을 사랑하며 평생 함께 하기를 갈망합니다. 진실로 살아계신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며 돕기를 원하십니다. 바다같이 망망한 세상에 홀로인 것처럼 외롭지만 그의 사랑은 당신의 추운 마음을 따스하게 녹여줄 것입니다.
들새 같은 나의 마음 몇 년 동안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쉼없이 들려왔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 사람이 원숭이에서 진화한 것이라면 다른 동물과 무슨 차이가 있나? 남보다 뛰어난들 그것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나는 한 때 살아있는 모든 의미를 사랑에 쏟아 부었다. 어떤 시에 이런 내용이 있다. “내 마음은 이 들새와 같이 당신의 두 눈에서 하늘을 찾았다.” 매번 책을 덮을 때면 생각은 끝없이 달려간다. 이것은 대체 무슨 느낌이란 말인가? 나는 아주 오랫동안 일방적으로 답장도 오지 않는 편지를 썼다. 익숙한 그의 모습을 쫓아 버스에서 뛰어 내려 추운 겨울에 홀린 듯 달렸다. 그렇게 4년이란 시간 동안 연애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배신을 당하고 상처를 받고 나서야 알았다. 모든 희망을 한 사람에게 건다는 것이 얼마나 나약하고 어리석은 일인지.
그때 나는 자살까지 생각하며 매일 눈물로 보냈다. 계속되는 아픔에 감정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아주 쉽게 사람을 만나고 가벼운 사랑을 했다. 헤어질 땐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가장했다. 스물 두 살이 된 나는 이같이 상처를 주고받는 연애를 하며 하루하루 생각없이 보냈다. 점차 내 마음엔 두꺼운 딱지가 앉았고 내면의 상처는 여전히 치유되지 않았다. 나는 미국으로 이민 갈 계획을 세웠고, 그곳에 가면 모든 것이 다 해결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삶은 결코 쉽지 않았다. 영어에 대해 자신감이 넘쳤던 나는 커피 한잔 사는 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법학을 공부하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수업내용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수업시간이 지났어도 다 끝내지 못하는 것이 나의 현실이었다. 외할머니는 내가 미국에 온 지 2년이 됐을때 세상을 떠나셨다. 삶과 죽음 사이의 슬픔과 고독함이 내 마음에 파고 들어와 삶은 무너져 갔다. 나는 술과 담배에 의지해 스스로를 마비시켰고 겉으로는 강한 척했지만, 마음은 벼랑 끝에 서서 곧 떨어질 것만 같았다.
슬픔과 근심이 일시에 사라지다 하지만 나는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예수님이 나를 붙들어 주셨기 때문이다. 나는 무신론자는 아니었지만 운세, 별자리 점에 열중했다. 단지 복음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외할아버지 장례식 때로 기억한다. 일곱 빛깔 무지개가 줄곧 우리 차를 따라왔다. 그래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결코 떠나지 않으셨고, 어딘가에서 어떤 형태로든 여전히 살고 계실거라고 굳게 믿었다.
미국에서 기독교인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그들은 결코 먼저 교리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나를 데리고 장을 보러 가고 식사에 초대하며 때때로 교회활동에도 초청했다. 나는 본래 기독교를 접해 본 적이 없었지만, 당시 너무도 절망스럽고 공허했기에 만약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말처럼 정말로 예수가 나를 도와줄 수 있다면 한번 부딪쳐보자고 생각했다.
어느 해질 무렵 길을 걷고 있던 나는 하늘에 펼쳐진 저녁 노을을 보며 이처럼 아름다운 모든 것은 분명 위대한 예술가가 창조한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하나님, 정말로 살아계신다면 저에게 보여주세요.” 당시의 나는 여전히 남아있는 어리석은 감정과 과중한 학업, 외할머니를 떠나 보낸 슬픔 속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던 그 다음날 이른 아침에 깨어나자마자 아주 자애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라고. 그러자 마음 속에 있던 슬픔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큰 산이 허리를 짓누르고 있는 것 같은 마음의 부담감이 일시에 사라진 것이다. 나는 너무 기뻐서 펄쩍 뛰었다. 이러한 변화는 나의 힘으로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내게 어떤 초월적인 능력이 생겨서 일어난 것도 아니었다. 나는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확신이 생겼다.
다시 사랑을 믿게되다 하나님과 동행했던 첫 해 믿음이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나로서는 이것은 평범치 않은 성장 경험이었다. 세례를 받은 이후로 일종의 도덕적 우월감이 생겼다. 동시에 주님의 징계가 뒤따랐다. 마침 당시 미국은 경제적 침체기였고, 나는 진학시험에 불합격 했다. 마치 광야에서 불 시험을 당하는 것 같았다. 나 자신의 힘으로 해 보려 했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며 끝없이 하나님께 묻고 또 물었다. 왜 내게 이런 좌절을 겪게 하시는가? 하지만 이런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되었고 나의 교만함이 겸손함으로 변해갔다. 뒤돌아볼때 이런 모든 일을 통해 나는 더욱 예수님을 의지하게 되었고, 좌절과 시험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내 삶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이런 일이 많을수록 하나님에 대한 나의 믿음도 더욱 커졌다. 공부하는 동안 하나님은 한 자매를 알게 해 주셨다. 겨울 방학 때 우리는 북미의 중국인 크리스천 대회에 참가해 사영리 훈련을 받게 되었다. 돌아와서 우리는 동시에 성령의 감동을 받고 똑같은 비전을 갖고 학교 안에서 여학생 소그룹 모임을 만들었다. 우리는 많은 싱글 여학생들을 모집했다. 우리처럼 이국 땅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이었다. 모두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매주 금요일에 만나 주로 삶의 사소한 이야기와 개인의 고민 등을 나누었다.
이 모임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예를들어 진심으로 타인을 사랑하는 법이라든지,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등, 단지 말씀을 배우거나 지식을 쌓는 일에 그치지 않았다. 학창 시절의 막바지에 이르러 하나님은 내게 남자친구를 예비해 주셨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는 내게 사랑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해 주었고, 맡기는 것과 포용하는 것이 사랑의 참 뜻임을 일깨워 주었다. 또한 세상에 진실하고 성결한 사랑이 있음을 다시 한 번 믿게 해 주었다. 하나님은 내 마음 속의 상처를 완전히 치료해 주셨고, 마음 속 쓴 뿌리도 제거해 주셨으며, 정욕으로 범한 모든 죄도 용서해 주셨다.
이후로도 하나님은 내 발의 등불이 되어 주셨고, 믿음에 의지하여 한걸음 한걸음 내 딛으며 소망을 바라보게 해 주셨다. 하나님은 말씀과 기도 응답으로 늘 위로를 주시고 힘을 주시며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나의 마음은 새처럼 하나님의 두 눈에서 하늘을 찾았다.
출처│海外校園 101기期 2010年6月 번역│이순자․본지 번역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