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예배당.JPG)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산간지역의 아름다운 풍경과 여유로움을 막연히 동경한다. 그러나 막상 산간지역에서 얼마동안 지내다 보면 절경과 고즈넉함에 가려진 애환을 느끼게 될 것이다. 현재 산간지역의 교회와 성도들을 돌보고 있는 사역자들은 여러 가지 문제 앞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소망을 품고 고군분투하고 있는 사역자들을 만나보았다. -편집자 주-
어려움 우리는 자동차로 한 시간을 달려서야 산골마을의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갖가지 농작물이 심겨진 텃밭을 지나 산골짜기로 깊숙히 들어 갈수록 길은 점점 좁아졌고, 길 끝에서야 비로소 A형제의 고향 교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십여 년 전부터 나는 S장로를 알고 지냈다. 오랫동안 그녀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소식은 종종 듣고 있었다. 그녀는 결혼하기 전부터 산골지역을 순회하며 예수님의 제자들이 둘씩 짝지어 돈과 전대와 옷도 가지지 않고 전도했던 것처럼 사역했다. 그러던 중에 그녀는 50세를 넘긴 2008년에 지금의 남편인 상(尙)장로와 결혼을 했다. 상 장로가 상처(喪妻)하면서 재혼하게 된 것이다. 이제 그녀는 이 마을에서 잠시 거주하는 외지인이 아니라 남편을 통해 주민증을 갖게 되었다. 주변사람들의 수근거림이 있었지만, 그녀는 노년에 함께 할 반려자와 가정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었다.
교회의 어려운 사정을 배려해 준 당 간부의 협조 덕분에 마을 어귀에 있는 언덕을 개간할 수 있었다. 모든 성도들이 함께 작업을 해서 약 30평 정도의 교회 터를 마련한 후, 성도들의 헌금으로 예배당 건축을 마무리하였다. 나는 S장로에게 성도들이 몇 명쯤 모이는지 물었지만 그녀는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단지 30-50명 정도 될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성도들의 헌금으로만 교회건축을 마칠 수 있었냐는 질문에 A형제는 기존의 성도들과 도시로 이주하여 정착한 본교회의 성도들이 건축헌금을 많이 보내왔다고 답했다. A형제의 식구들도 대부분 도시에 나가 가정을 이루고 정착했다고 한다. 고향 교회가 건축한다는 소식에 건축헌금을 보내긴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그 누구도 고향 교회로 돌아와서 성도들을 목양하거나, 사역을 개척할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S장로가 끝내 교회 성도들이 몇 명인 것을 밝히지 않는 것도 역시 시골교회에 목회자와 청년들이 거의 없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B마을의 30-40명의 성도들은 한 형제의 집에서 모임을 갖고 있다.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들의 대부분은 중년층과 노인들이고, 청년들은 거의 없다. 자녀들은 모두 도시에 나가서 생활하고 있다. A형제의 고향에는 이제 십여 가구 밖에 남지 않았다. 그의 집안식구들이 마을 인구의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 그와 동생은 먼저 도시로 나가서 일자리를 구한 후에 마을교회 형제들에게 일자리를 주선해주었다. 고향에는 연로한 부모만 남겨져 있을 뿐이다.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대다수의 농촌 청년들은 도시로 유입되고 있다. 때문에 산골지역의 교회는 심각한 난관에 봉착했다. 교회에 청년들이 없을 뿐만 아니라, 목회자로 헌신하는 청년도 없어진 것이다. 도시의 목회자들은 산골지역에 가서 목회하는 것을 꺼려한다. 산골지역의 교회는 도시교회 보다 노령화 현상이 현저하다. 이러한 현상은 점점 더 심각해질 것이다. S장로는 고학력자는 아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정으로 산골지역을 두루다니며 전도사역에 전념하고 있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수고하며 목회할 젊은 목회자들이 없기 때문에 S장로는 홀로 산골지역의 여러 교회와 성도들을 돌보고 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초록빛으로 물든 산봉우리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꼬불꼬불한 산길을 몇 시간동안 달려 깊은 산속에 자리 잡은 교회에 도착했다. 아침부터 4곳의 교회를 둘러보았다. C자매는 15리나 떨어진 마을에 가기 위해 우리 차에 합석하였다. 절반쯤 가고 있을 때, C자매의 어린 딸에게서 계속 전화가 왔다. 전도하기 위해 한 번 외지로 나가면 며칠씩 집을 비우는 엄마에게 전화해서 “엄마, 집에 와요. 빨리 와요” 하며 엄마를 찾는 것이다. 그녀는 “엄마가 설교 끝나면 빨리 집에 갈게. 가는 길에 네가 좋아하는 것 사 갈게” 라며 보채는 아이를 달랬다. C자매는 미안해하면서 작은 딸은 본인이 타지에 전도사역을 갈 때 마다 이렇게 칭얼댄다고 했다. 여리고 겁이 많은 작은 딸은 엄마가 없는 동안 병든 아빠와 허름한 집에 남겨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우리는 차를 타고 깊은 산골지역을 다니면서 버스가 다니지 않는 마을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마을의 성도들은 5-6리 길을 걸어야만 교회가 있는 마을에 갈 수 있었다. 4-50명이 예배를 드리는 한 교회에는 C자매가 일전에 “동방번개(東方閃電)”라는 이단의 손아귀에서 건져낸 양들이 있다. 그녀는 비록 남편이 병상에 누워있고, 딸아이가 울며 보챈다 할지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한다. 매주 두번 이 산골교회 성도들을 찾아와 이들이 믿음의 반석 위에 견고히 설 수 있도록 섬기고 있는 것이다. 10리, 20리 길을 걸어가야 하는 마을도 마다 않고 다니고 있다.
끝도 없는 산길을 홀로 걸어가는 C자매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그녀의 마음은 어떨까? 주님을 향한 넘쳐나는 열정으로 전혀 외롭지 않을까?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로 갈등할까? C자매와 S장로가 얼마나 힘들게 사역하고 있는지 주님은 다 아실 것이다. 깊은 산골 구석구석에는 복음을 전하는 두 자매의 아름다운 발자취가 남겨져 있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우리는 시내를 벗어나 서쪽으로 15리쯤 달려 강가에 위치한 교회에 도착했다. 150평 남짓 한 공간에 10여 채의 집과 사무실이 완공되어 있었고, 중앙에 예배당을 짓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A형제 부부는 신학교를 졸업한 후, 곳곳을 다니며 양육과 전도를 병행했다. 그는 현(縣)에서 가장 큰 교회를 건축할 꿈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교회를 방문했을 때는 마침 40여 명의 성도들이 임시 예배처소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A형제 교회에서 남쪽으로 2리쯤 떨어진 곳에도 교회가 있다. 그런데 그 교회의 목사가 성도들에게 A형제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지 말것을 당부했다는 것이다. 성도들의 헌금이 분산 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30대 초반인 A형제는 교회를 건축할 재정을 지원 받을 곳도 없는 상황에서 건축헌금, 생활비 등 모든 것을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그는 밭에 농작물을 심고, 논을 임대해서 농사를 지었는데 수확량이 많았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있다. 그는 내게 사도바울도 복음을 전하면서 손수 텐트도 만들어 생활비를 충당해 나갔다고 말했다.
A와 사역에 대한 비전, 일상생활과 가정에 대해 이야기 하던 중에 A가 한숨을 쉬며 내게 말했다. “하나님은 공평하지 않으신 분 같아요!” 깜짝 놀란 나는 자초지종을 물었다. 알고 보니 그동안 그는 여러가지 어려운 일을 겪고 있었다. 그의 딸은 태어나자마자 생명이 위태로워 1년 동안 베이징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고, 치료비만 약 5만 위안(元)이 들었다. 베이징 성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는 벌써 파산 당했을 것이라고 했다. 또 동생이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일로 인해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의 고통은 이루말 할 수 없었다.
A는 이러한 시련을 겪으며 낙심하여 오랫동안 회복되지 않았다. 산골지역의 성도들은 A에게 “당신은 목회자인데 왜 그런 일을 당하나요? 동생은 왜 교통사고로 죽은건가요? 주님을 섬기는데 왜 불행한 일만 당하나요? 하나님을 믿으면 정말 축복을 받는건가요?….” 이런 어려운 질문을 쏟아냈다. 성도들의 이런 비난 섞인 질문은 사역자들에게 생활고 보다 더 큰 상처를 남기는 것이다.
이렇듯 산골지역에서 여러 예배처를 두루 다니면서 성도들을 돌보는 농촌지역 사역자들 에게는 우리의 도움과 격려가 필요하다. 또한 그들의 수많은 필요를 돌아보아야 한다. 이들의 열악하고 어려운 상황을 직접 보고나니 내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에 대한 한계를 절감한다. 오직 이들의 어려운 처지와 모든 문제들이 하나님 안에서 해결 받고, 주께서 친히 이들을 축복해주시길 중보할 뿐이다.
남겨진 과제 산골지역의 교회에는 점점 노인들만 남게 된다. 비록 외지에 나가 교회 건축을 위해 헌금하는 젊은 성도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교회 내에 젊은 성도들이 없기 때문에 팀을 이루어 조직적이고, 역동적으로 사역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이단이 침투해도 무방비 상태일 뿐만 아니라 교회 내 모임 자체가 활성화 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C자매와 S장로와 같이 도처를 다니며 성도들을 심방하고, 양육하는 일을 감당하는 사역자들도 심화되는 도시화, 노령화 등의 사회적인 문제들 앞에 무방비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출처│展望中華 67期 번역│ 차이나ㆍ중국어문선교회 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