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은 중화인민공화국건립 60주년이 되는 해였다. 60년 동안 중국사회의 각계각층에서는 천지개벽과 같은 큰 변화가 있었다. 중국 개신교회 역시 신도의 수, 연령구조, 사회영향력뿐 아니라 교회내부의 관리양식에 있어서도 시대적 변화의 흐름에 따라 상당한 변화가 나타났다.
특정한 역사적 시기와 배경에 따라 기독교는 서로 다른 파송회와 종파로 중국에 들어왔다. 한때 기독교회 종파가 우후죽순처럼 유입되었다. 1949년 이전의 중국교회는 기본적으로 서방에서 파송된 선교사 모임이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었고, 따라서 각 종파는 자기의 전통, 규칙제도와 관리양식을 계승했다. 70만 성도들은 성공회, 침례회, 장로회, 순도회, 신의회, 전도회, 자립회, 소회, 안식일회, 예수 가정회, 청년회 등 크고 작은 종파 안에 각각 나누어져있었다. (통계: 1860년《베이징 조약》후, 전도의 자유가 허락되면서 중국에 선교하러 온 선교사 팀은 160개에 이르렀고. 선교사는 80명에서 2,000명으로 증가되었다.)
회고 간단히 본다면, 60년 동안 중국교회가 차용한 관리 양식을 세 시기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 1949년~1958년 1950년에 시작 된「삼자(三自)1)」운동 때부터 1954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 1회 중국기독교전국회의(中國基督敎全國會議) 이전까지, 각 종파의 교회는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자신들의 관리 제도와 특징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러나 1954년 이후 각 교회들은 「삼자(三自)」시스템을 교회 관리 방식에 점차 받아들이게 되었다.
1958년 중국교회는「연합예배」를 실행하였다. 전국의 교회 수효는 대폭으로 축소되었고, 합병이 이루어졌다. (200개가 넘는 상하이의 교회가 15개로 줄어들었고, 베이징의 64개 교회는 4개로 축소되었다.) 이때부터 중국교회역사에서 종파는 없어졌다. (비록 종파현상은 아직도 있지만 중국기독교회양회는「종파후시대」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 시기의 교회관리양식은「삼자(三自)」시스템과 종파 특색의 관리체계가 병존해있었다. 그러나 가정교회의 관리양식은 선교사 자신의 관리양식을 따랐다. 이 시기에는「삼자(三自)」교회와 가정교회 모두 교회 발전이 위축되었다.
2. 1958년~「문혁(文革)2)」전 1958년의「연합예배」는 각 교계에 삼자 시스템이 미치는 역량과 영향을 강화시켰다. 이 시기의 긴장된 정치적 분위기와 정세로 인해 각 교계에 삼자 시스템이 형성되었으며, 삼자 주석과 비서장이 교회의 제반 사항과 실무를 관리하는 권한을 갖게 되는 형세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문화대혁명(1966~1976) 전까지 계속 되었다. 이 시기의 특수한 주변 정치 상황으로 인해 삼자교회와 가정교회 모두 교회 발전양상이 조정되는 형태를 띠게 되었다.
3. 1980년대~현재 「문혁」이후「개혁개방」의 걸음이 커짐에 따라, 기독교회도 전례 없는 눈부신 발전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관방통계에 따르면, 현재 기독교 성도가 대략 2,100만이라고 한다. 이것은 1949년 건국 당시의 거의 30배가 되는 수이다. 전국엔 약 5만 여 교회와 집회지가 있으며, 18개의 신학학원과 2만여 명의 목회자가 있고,「양회??」3)는 이미 거의 5,000만 부의 성경, 2,000만 부의 찬송가(신편)을 출판했으며 각종 교회 간행물, 신학참고서적 역시 대량 발행했다.
이 시기의 교회관리양식은 마치 상업영역의 사장 책임제, 공장장 책임제와 같이 주로 담임목사 책임제, 전도사 책임제로 이루어졌다. 이와 동시에 몇몇 교회에는 아직도 삼자 주석(主席), 비서장(秘??) 제도가 존재해왔다. (이런 교회의 주요한 곳은 각 성, 시 급에 있는「양회」교회였다.)
교회관리부분에서도 서로 다른 양식을 가지고 있었다. 시 관할구역( 선교사 파송회의 통일, 재무관리의 통일, 교회건축의 통일 등), 각 교회 자치구역(인사, 재무, 총무 등 완전 독립적), 가정교회는 일반적으로 전도사 책임제, 사역자 표결제, 가정심방 제도를 차용하고 있었다.
삼자교회와 가정교회 모두 이 시기에 왕성하게 발전하였고, 성도의 수 역시 대폭적으로 증가하였다.
교회 상황 교회가 명확한 관리 허가권 규정 없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교회 관리에 여러 문제들이 생겨났다.
- 일언당(一言堂) 내륙교회에 「일언당(一言堂)」 현상이 나타났다. 몇몇 교회들은 어떤 특정 사람, 혹은 어떤 집안이 교회를 설립하면서 그 사람이 독점적으로 권력을 차지하게 되었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절대 수용하지 못하면서 모든 교회 일을 그 사람 혼자서 주인처럼 처리하였다.
- 한 자루 펜 (一枝?) 교회 전통에 따르면, 주일예배 중에 집사, 장로는 성도들에게 지난 주 혹은 본 달의 재정 수입과 지출 상황에 대해 보고하는 절차나 순서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 적지 않은 교회는 모두 재정을 공개하지 않는다. 공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감독도 결여되어있다. 비록 교회에는 회계, 출납 절차가 있고, 교회 지출 비용은 교회 책임자의 허락이 있어야 하지만, 비준허가권, 금액, 용도 모두 해당 관리자가 허락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교회재정은 감독, 회계 감사, 조사가 없고 권력이 없는 진공공간이 되어 버렸다.
- 한 사람 (一?人) 교회의 안팎의 모든 일을 한 사람이 한다. 왜일까? 그 원인은 이렇다. 교회책임자는 동역자 배양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새로운 지도자를 양성하기 싫어한다. 자기 주변에 자신과 경쟁할 만한 맞수가 나타나는 것을 싫어한다. 일단 자신보다 강한 능력, 은사를 가진 사람이 나오면 안수해주지 않거나 사역할 기회를 제공해주지 않는다. 또는 산골이나 오지로 보내거나 외지 공장에서 사역하도록 한다.
결과적으로 몇 년, 몇 십 년이 걸려서야 교회가 세워지고 단지 한 사람이 모든 책임을 맡는다. 교회내의 모든 일은 그 사람의 동의가 있어야 처리되며 어떤 일이라도 반드시 그 사람이 몸소 행하며 모든 것을 독차지 하게 된다.
‘일언당’, ‘한 자루 펜’, ‘한 사람’과 같은 현상이나 동역자 사이의 충돌이 없는 교회는 평온하다. 그러나 동역자 사이에서 (심지어 성도 간에) 충돌이 발생하고 해결을 찾지 못할 경우에 교회는 중대한 위기를 맞게 된다.
긍정적인 측면 기쁜 것은 귀국파 교회, 제 3유형의 교회 등 신형교회의 출현이 사람들에게 더 다양한 관점과 생각을 제공해줌으로써 중국교회의 관리양식에 한 줄기 빛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1. 단합정신 신형교회의 성도는 보통 아주 젊고 고학력을 지니고 있으며 대부분 교회는 그들 스스로 개척하고 건립한 것으로 교회는 서로 조화롭게 일을 안배해주고 단합해서 섬기는 것을 배웠다.
2. 창조정신 신형교회는 교회배경과 종파관념이 없고 뜨겁고 열정적인 형제자매 집단이 한 조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광범위하게 국내외 화교교회의 관리양식과 경험을 빌려오고 그들의 교회 상황에 맞는 제도와 관리방식을 제정하며 관리한다.
3. 섬김정신 교회의 재정방면의 투명성이 아주 높아 신뢰도가 높으며, 형제자매들은 모두 적극적으로 섬긴다. 수해가 나면 성금과 물품을 모으고, 지진이 나면 아낌없이 기부하여 도와주며, 예배당 건축을 위해 건축기금을 봉헌한다. 또 중남부 지역, 화동지역의 몇몇 신형교회 동역자들은 주도적으로 경로당에 방문하거나 복지원에서 봉사하면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사람들을 섬기고 있다.
출처 |www.ccchina.org 번역 | 홍현희 · 자원봉사자 각주)----------------- 중국교회가 자립(自立), 자양(自養), 자전(自傳)해서, 교회의 경제와 인재 등을 서양교회와 선교단체에 의지하지 않고 자급자족해야 하며 중국교회 사역의 부담과 책임을 외국 선교사들로부터 점진적으로 중국인 신도들에게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 1966년부터 1976년까지 마오쩌둥[毛澤東]에 의해 주도된 극좌 사회주의운동으로 부르주아 세력의 타파와 자본주의 타도를 외치면서 모택동의 지시에 따라 홍위병이 전국을 휩쓸어 중국은 일시에 경직된 사회로 전락하게 되고 퇴보하게 만든 문화대혁명의 약칭. 자립(自立), 자전(自傳), 자양(自養)의 세 가지 원칙아래 독립적으로 존재, 독립적으로 전파, 독립적으로 자급자족을 의미하는 중국기독교 협회 삼자 애국운동위원회(약칭 양회(兩會)).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