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가하는 기독 대학생들 20세기의 중국은 80년대 이후 거대한 사회변화를 맞고 있다. 경제체제 개혁이 점진적으로 심화되어감에 따라 시장경제가 사회주의 중국의 현실이 되었다. 그와 더불어 사회 각층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는데, 특히 종교 열풍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1982~2001년 사이 통계상 천주교, 기독교, 이슬람교인 수가 1천만 명에서 6천만 명의 증가를 보이고 있고, 정확하지는 않지만 불교와 도교도 1천만 이상의 증가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신자들의 70-80%가 80년대 이후 입교한 사람들인데 그 중 30%가 청년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80년대 이후 기독교 현상에 대한 연구가 끊임없이 이어져왔는데, 2000년 이후에는 청년들, 특히 대학생 기독교 단체의 출현과 증가가 두드러진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필자의 중국생활 10년동안 피부로 느끼는 것이기도 하지만, 여러 논문을 통해 조사되어진 바, 대학생 중 기독교 발전 세력이 다른 어느 종교보다 우세하여 가장 많은 성도를 가진 종교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들이 갈망하는 것 중국에서 비교적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 대학생, 어릴 때부터 무신론 교육을 받아온 이들이 무슨 이유로 그것을 등지고 유신론으로 변화되며 종교신봉자가 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그들이 종교를 접하게 되는 경로를 보면 첫째, 종교적 배경을 가진 가정에서 태어난 경우이다. 할머니나 어머니, 이모, 고모의 영향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비록 그들을 통해 믿지 않았을지라도 이미 귀에 익은 것이 있기 때문에 대학에서 새로 접하게 되었을 때 거부감을 덜 느끼는 것을 볼 수 있다. 둘째, 종교서적 열람을 통해 기독교를 접하게 된다. 지식과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시기에 서적을 통해서 지식을 갖게 되고, 실질적으로 경험해 보기를 원한다. 셋째, 흥미로운 종교의식에 대한 관심이다. 다른 모임이나 단체와 다르게 교회에 갔을 때 느끼는 경건한 종교적 분위기와 사랑이 있는 분위기에 편안함을 느낀다. 넷째, 친구 등 지인의 소개를 통하는 경우이다. 친구나 회사 동료는 누구보다 믿을 만하고 또 그들을 통해 듣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참여하게 된다. 다섯째 전도자를 통해 인도함을 받는다.
대학생의 정신적 추구는 이전의 신앙인들과는 다르다. 과거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로 정신적 평안, 위안, 그리고 극도의 고독함이나 공포, 무력함, 질병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대학생들은 종교문화의 영향과 교류의 범위를 넓히고자하는 욕구가 생겨난다. 또한, 어려서부터 가족의 관심과 보호, 통제를 한 몸에 받아오다가 대학생이 되면서는 다양한 환경을 접하게 된다. 다량의 다양한 문화를 접하게 되면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심리적으로 의지할 곳을 찾거나 존재의 의의를 찾는 등 정신적인 갈구나 생명의 의의를 찾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우리가 넘어야 할 산 중국에서 대학생과 직장 젊은이들 사이에 기독교가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현장에서 그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여 견고한 믿음 위에 세우기까지 부딪히는 벽은 상당히 많다.
필자가 2000년에 이곳에 와서 그들을 만나고 어느정도 대화를 나누게 되면서 지금까지 가장 많이 해온 것은 무신론자들의 한결같은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었다. 현재의 사역지에 와서 4년동안 거의 300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다녀갔는데, 무신론과 진화론에 묶여 있는 그들에게 그것은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이고 관심사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성경 내용에 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양상이 커지고 있다. 일단 교회에 남는 사람은 그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운, 분위기, 교제때문에 남는 사람이 많다. 또 처음에는 호기심때문에 머물지만 신자들 특유의 언어, 태도를 못 견뎌 떠나는 사람도 많다. 예를 들면, 입만 열면 ‘주여, 주여’ 한다든지, 과장된 듯한 회심사, 유일성을 강조하는 기독교의 배타성 등 받아들이기 힘든 특성이나 문제를 지적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단의 문제가 심각하다. 우리 교회에는 농촌 출신들이 많은데 어머니나 할머니가 신앙이 있다고 하는 사람 중의 반이상은 이단의 특색을 띠고 있다. 다행한 것은 그나마 많은 학생들이 아직 신앙을 가지고 있지않아서 내용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학교주위에 이단의 활동도 활발하여 캠퍼스 내에서 전도하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단을 보게 되는데 심지어 교회 내에 들어와 역전도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또한 파룬궁(法輪功)과 같은 사교들의 활동이, 종교의 자유가 없는 이 곳 정부에게 종교활동을 통제하게 하는 더 큰 이유들을 주고 있어 교회가 탄압을 많이 받고 있다. 우리 모임도 최근에 공안의 조사를 받음으로 해서 모임이 더 위축되었는데 이는 현지인 사역자뿐만 아니라 외국인 사역자에게 상당한 장애요소이기도 하다.
외국인 사역자는 무엇보다도 언어의 장애를 극복하지 않으면 특히 교회를 개척할 때 많은 난관에 부딪치게 된다. 처음에는 외국인이 주는 매력으로 함께 같이 하지만 정말 한 교회의 지체가 되어 삶을 나누고 자신을 드러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지체들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 필자는 현재 두 곳의 모임 장소를 이끌고 있는데 한 곳은 전문대생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더 큰데 사실적으로 안정된 직장을 잡기도 힘이 든다. 그러므로 정신적, 경제적, 가정적, 인간관계면 등 각색각양의 문제를 많이 가지고 있다. 그들을 돕는데 언어만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지만 대화로 문제를 짚어주고 말씀으로 인도하기위해 언어의 중요성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 사역자들의 경우를 볼 때 외국인 리더로서 존중해 주고 따르는 이면에 그들이 느끼는 이질성은 생각보다 깊다.
마지막으로 동역자의 부족을 많이 느낀다. 이는 삼자교회나 현지인 가정교회 사역자들에게서도 보게된다. 실질적으로 한 사람, 한 가정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적이다. 특히 조선족 사역이나 기본 신앙의 문화가 있는 곳이 아닌 이 땅에서 거의 무신론자들을 데리고 시작하는 경우, 사람을 만나고 교제를 나누며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며 돌보는데 필요한 역량은 엄청나다. 조속히 리더를 키워 그들로 하여금 일하게 하라는 말은 표면적이고 현실과 조금은 거리가 있는 말이다. 물론 역량있게 활동하는 분들도 있음을 안다. 하지만 힘이 더해질때 효과는 몇 배가 넘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역자들이 협력하여 더 많은 열매를 맺는 일에 힘을 썼으면 한다.
필자는 그간 개인적 사정으로 부부가 완전히 사역에 몰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제는 남편이 신학공부로 인해 몇 개월씩 떠나지 않아도 되고 육아부분에서 여유를 갖게 되어 사역에 좀 더 힘쓰려고 하는데 여전히 가야할 길은 멀다. 그나마 젊은 직장인이 조금씩 늘고 있어서 졸업하면 떠나버리는 대학생들을 대치하고 있지만 대부분이 대학생인 모임에서 직장인, 가정으로 연령대가 넓어지고,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인으로 모시는 삶을 살아가도록 가르쳐 이들이 이 사회에 책임을 가지고 곳곳에서 그리스도인의 몫을 하는사람이 되고 교회가 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주님 오실때까지 그 일을 감당하고자 한다.
이사라│중국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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