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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4.30 통권 113호     필자 : 강인규 프린트   이메일 
[중국선교역사]
민난(闽南) 지역의 최초의 선교사 아빌

지난 호에는 근대 중국 최초의 의료선교사 파커에 대해 소개하였다. 이번 호에는 푸젠(福建)성 이남지역을 민난(闽南)이라고 부르는데, 이 지역 최초의 선교사로 활동한 아빌(David Abeel, 1804-1846, 雅裨理)을 소개하고자 한다. 아빌은 1830년 미국 개혁교회(American Dutch Reformed Church)의 파송을 받아 근대 중국 최초의 미국선교사 브리즈맨과 함께 중국에 왔다. 그는 광저우(廣州)에서 모리슨, 브리즈맨 등과 함께 사역하다가, 동남아지역으로 옮겨, 화교들을 대상으로 선교하면서 민난어(闽南語: 현재 대만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배웠다. 아편전쟁이 끝나고, 중국은 홍콩을 영국에 할양하고, 광저우, 샤먼(廈門), 푸저우(福州), 닝뽀(宁波), 상하이(上海) 등 5개 항구를 개방하였다. 1842년 아빌은 샤먼이 개방되자 제일 먼저 샤먼에 도착하여 선교사역을 전개하게 된다.
 
선교사의 준비과정
그는 1804년 6월 12일 미국의 뉴저지 주(New Jersey)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네덜란드 계통의 미국인으로 미국 독립혁명 시기에 해군 장교로 국가에 공이 많았다.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아빌은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경건한 신앙 아래 성장하였다. 15세에 아버지와 같은 군인이 되어 국가에 공헌하고자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하여 입학이 허락되었지만, 결국 입학하지 않았다. 오랜 기도와 심사숙고를 거쳐 목회자로 일생을 헌신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1823년 퀸스대학(Queen’s College)을 졸업하자마자, 미국개혁교회(Reform Church in America) 소속의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뉴브런즈윅(NewBrunswick)신학교에 입학하였다. 1826년 4월 15일 신학교를 졸업한 그는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리고 5월 26일에 뉴욕의 그린촌(Greene Country)에서 아테네인(Athens) 교회에서 첫 목회를 시작하였다. 1826년 10월 31일 아테네인 교회에서 선교사로 임명 받아, 2년 동안 열심히 목회하였으나 건강에 문제가 생겨 부득이 교회를 사임하게 된다. 이후 1828년 서인도 군도(West Indies)에서 휴양하며 현지교회를 도왔다. 그 당시 서인도 군도는 덴마크의 지배하에 있었기에 영어로 설교를 할 수 없었다. 그가 서인도 군도에서 보낸 시간은 불과 몇 개월 이었지만, 그는 이 시간을 통해 해외선교사의 비전을 확고히 하고,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준비하게 된다.

 

광저우의 미국 신우회 선교
서인도 군도에서 생활을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 온 아빌은 광저우에서 활동하는 미국상인 올리펀트(D. W. C. Olyphant)에게 편지를 받게 된다. 광저우에 미국선원들을 돌보기 위해 “선원 신우회(the Seamen’s Friend Society)”가 조직되었는데, 이 신우회를 돌봐줄 목회자가 필요하니, 일 년 동안만이라도 선원 신우회 소속의 목사로 활동해 줄 것을 간절히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아빌은 이를 쾌히 받아들여, 1829년 10월 14일, 로마호를 타고 중국으로 출발하였다. 그 배에는 미국해외선교회(美部會)소속의 중국 근대 최초의 미국선교사 브리즈맨(Rev. Elijah Coleman Bridgman, 裨治文, 1801-1861)이 동승하였다. 그들은 3개월여의 긴 항해 끝에 이듬해 2월 25일 무사히 광저우에 도착하였다. 모리슨 선교사는 친히 항구에 나와 이들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아빌과 브리즈맨이 동시에 중국에 왔지만, 아빌은 미국인 선원들을 상대로 선교하였기 때문에, 역사가들은 브리즈맨을 근대 중국의 최초 미국선교사로 보고 있다. 

아빌은 미국 신우회와 비록 일 년 동안의 계약을 맺고 미국인 선원들을 대상으로 선교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중국어를 배우고, 기회만 있으면 중국인들과 접촉하며 장래 중국선교를 위한 준비를 해나갔다. 아빌은 당시 모리슨과 자주 만나 그의 사역에 협력하였다. 또한 중국 근대 최초의 중국인 목사인 양발(梁發)과도 좋은 관계를 맺어 동역하면서 그의 복음에 대한 열정에 깊은 감명을 받기도 하였다.
 
아빌의 동남아 선교사역
아빌은 광저우에서 미국인 선원들을 돌보는 선교사역을 하면서, 민난어는 물론 말레이어와 태국어 등을 배워, 중국과 동남아 선교를 위한 준비를 하였다. 일 년 간의 광저우의 선원신우회 사역을 마치고, 정식으로 미국해외선교회에 가입하여 브리즈맨과 같은 선교회 소속으로 동역하게 되었다. 그러나 건강이 좋지 않아 광저우의 선원 신우회 사역을 동료선교사 브리즈맨에게 맡기고, 휴양 차 인도네시아로 떠나야 했다.

1830년 12월 28일, 아빌은 헌트레이(Castle Huntley)호를 타고 인도네시아로 갔다. 그 이듬해 1월 18일 자카르타에 도착한 아빌은 영국 런던선교회 소속 메드헤스트(Rev. Medhurst, 麥都思) 선교사의 따뜻한 마중을 받고 그의 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인도네시아의 선교사역에 참여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메드헤스트의 동역자 영(William Young, 葉韓良)선교사를 알게 되고, 그와 좋은 선교동역자 관계를 맺었다. 메드헤스트와 영선교사는 중국어와 말레이어에 능통해 아빌도 이들을 따라 말레이어를 열심히 배워 그들의 선교사역에 협조하면서 중국인 화교들에 대한 선교의 비전을 받게 되었다. 그들은 기회만 있으면 부근의 중국인 화교촌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전도지와 소책자들을 나누어 주며, 화교들의 영혼 구원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아빌은 런던회 선교사뿐 아니라 그곳의 네덜란드 개혁종교회 와도 협조하여 장래 동남아 선교사역의 기초를 확립하고, 그들과 우호적인 협조체제를 조성하기도 하였다.

아빌은 자카르타에서 약 반년동안 선교사역을 하다가, 동남아의 다른 지역 사역을 탐방하기 위해, 6월 4일 싱가포르로 떠났다. 14일 싱가포르에 도착한 그는 런던선교회 소속의 톰린(Rev. Jacob Tomlin, 湯雅格)선교사의 도움을 받았다. 그때 마침 톰린선교사는 태국을 방문할 계획이어서 아빌은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톰린선교사와 함께 태국을 방문하였다. 그들은 태국에서 구츨라프 선교사를 방문하였는데, 마침 출타중이어서 만나지 못했지만, 그 지역에서 전도지를 나누어 주면서 선교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들은 태국에서 반년 가까이 선교활동을 하다가 아빌의 건강이 악화되어 1월 13일 다시 싱가포르로 돌아왔다. 그는 싱가포르에서 약 2개월 동안 휴양한 뒤 건강이 호전되자 다시 말레이시아의 마육갑을 방문하여 그곳 화교들과 말레인들을 대상으로 전도활동을 하였다. 

그는 건강이 좋지 않은 몸으로 약 2년 반 동안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태국과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전역을 방문하며, 그곳의 선교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한편으로 동남아 선교 현황을 몸소 체험하면서, 미국 해외선교회의 영역을 동남아까지 확장하고자 하였다.
 
아빌의 구미교회에 대한 영향
1833년 5월 25일, 아빌은 건강이 악화되어,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영국, 스위스, 불란서, 독일과 네덜란드 등 여러 국가들을 방문하고, 중국선교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유럽의 각 교회들이 중국선교에 적극 참여하도록 간절히 호소하였다. 특히 그는 미국과 네덜란드 개혁종교회 즉 장로교회가 서로 협력하여 동방선교에 동참할 것을 강조하였다. 뜻밖에 영국교회의 호응을 얻었다. 영국교회는 “동방부녀교육촉진회(Society for Promoting Female Education in the East)”를 조직하고, 아빌선교사와 협력하여 중국선교에 참여하였다. 아빌은 중국에는 인도보다 훨씬 더 많은 1억 5천만의 부녀자가 있는데, 단 한명의 여자 선교사가 없는 실정이라고 호소하면서, 중국 부녀자들의 어려운 생활상을 알리고, 영국교회가 중국 부녀자들을 위해 독신 여성선교사들을 더 많이 중국에 파송할 것을 호소하였다. 

1834년 9월 6일 아빌은 긴 유럽여행을 마치고, 뉴욕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그는 동방에서 돌아온 최초의 미국선교사였기에 그가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미국 각 교회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그는 미국동부 연안지역의 각 학교, 신학교, 교회와 여러 부녀단체 등에 초청되어 중국과 동남아 선교의 실정을 자세히 알리고, 동방선교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에 각 교회와 신학교가 함께 동참하도록 간절히 호소하였다. 그가 친히 체험한 동방선교의 체험담은 많은 사람들을 쉽게 감동케하여, 미국교회가 동방선교에 관심을 갖도록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는 바쁜 강연일정에도 선교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아서 1935년 여름부터 의과대학에서 의학공부까지 하였다.  

아빌은 미국에 머물면서 미국 내의 네덜란드 개혁종교회가 중국선교사역에 적극 참여하도록 협조하였다. 특히 그는 미국 여전도선교회 회장인 도렘스부인(Mrs. C. T. Doremns)에게도 깊은 영향을 끼쳐, 여전도선교회가 중국선교에 참여하도록 적극 협조하였다. 그뿐 아니라, 그는 미국의 각 교단마다 여전도선교단체를 설립하도록 호소하고, 미국여성들이 동방의 낙후된 나라들의 부녀자들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는데 일익을 담당하자고 간절히 호소하였다.
 
아빌의 샤먼(廈門) 선교
1838년 10월 17일, 아빌은 두 번째 중국을 향해 출발하였다. 이번에 그와 같이 가는 선교사는 모리슨기념학교의 교장 브라운(Rev. and Mrs. Samuel R. Brown)선교사부부와 키스버니(Rev. and Mrs. B. P. Keasburny)선교사 부부였다. 그들은 올리펀트 선박회사에서 무료로 제공해주는 배를 타고, 이듬해 2월 20일 마카오에 무사히 돌아왔다. 당시는 중국과 영국이 아편문제로 전쟁직전의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광저우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던 브리즈맨, 파커와 윌리암스 등이 모두 마카오로 피신하였기에 오랜만에 옛 선교동역자들과 즐거운 해후를 할 수 있었다. 그는 마카오에서 중국어를 배우면서, 파커 의사가 경영하는 진료소에서 환자들을 돌보아 주었다. 그러나 정국이 점점 악화되어, 1941년에 부득이 다시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지역으로 옮겨 그곳의 네덜란드 개혁종교회와 협력하여 동남아 선교사역을 추진하였다.

아편전쟁에서 중국이 패하여, 영국과 중국은 난징조약(南京條約)을 체결하여, 중국은 많은 배상금을 지불하고, 부득이 홍콩을 영국에 할양하였으며, 또 광저우(廣州), 샤먼(廈門), 푸저우(福州), 닝뽀(宁波)와 상하이(上海)등 5개 항구도시를 개방해야 했다. 1841년 12월 아빌선교사는 아편전쟁이 끝나는 무렵에 동남아시아에서 다시 마카오에 돌아오고, 1842년 2월 24일, 미국성공회 소속의 분(Rev. W. J. Boone)선교사와 함께 마카오를 떠나 샤먼에 도착하여, 구랑위(鼓浪嶼)에 선교 기지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중국선교를 전개하였다. 이로서 아빌과 분은 근대 중국에서 제일 처음 민난지역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한 외국선교사가 되었다.  아빌은 3년 동안 샤먼에서 민난지역의 선교기지의 기초를 형성하고 있을 때, 네덜란드의 개혁종교회가 도티(Elihu Doty)와 폴맨(William John Pohlman) 두 선교사를 파견하여 아빌의 민난지역 선교사역을 도왔다. 이들의 참여로 구랑위는 명실상부한 민난지역의 주요한 선교기지로 성장 발전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집 두 채를 사서, 한 채는 의료선교를 위해 병원으로 사용하고, 다른 하나는 교회로 사용하여, 교인이 70여 명으로 증가하였다. 이로써 이 교회는 민난지역에서 최초의 교회가 되었다. 아빌의 중국선교가 미국 각 교회와 학술계에 인정이 되어 1844년 여름에 뉴저지 주의 루거(Rutger’s College) 대학에서 그에게 명예신학박사(Doctor of Cemetery) 학위를 수여하였다.

1843년 9월, 푸젠성의 포정사(布政使) 쉬지위(徐繼畲)는 그 당시 통상업무를 겸임했기 때문에, 직무상 외국 영사와 자주 만나야 했다. 아빌은 민난어에 능통하여, 자연히 영국 샤먼 초대 영사 그리블(Henry Gribble; 記裏布)의 통역을 담당하였다. 아빌은 쉬지위와 만날 때마다, 기독교의 교리를 설명하고 복음을 전하고자 노력하였다. 쉬지위 역시 외국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빌에게 외국의 역사, 지리와 정치 등에 관하여 물어보기를 좋아해 두 사람는 쉽게 친구가 되었다. 아빌은 쉬지위에 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한 적이 있었다. 

“그는 전혀 엄숙하지 않고, 매우 우호적이며, 자연스러운 태도로 우리를 대해주었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그가 외국에 대한 지식이 상당한 수준임을 쉽게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는 세계 각국의 상황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각 나라의 면적, 중요한 정치사건과 무역관계 등, 특히 중국과의 무역관계에 대해 지대한 흥미를 갖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영국, 미국과 불란서에 대한 지식들을 매우 자세하게 알려고 노력하였다.”

쉬지위는 아빌을 통해 외국의 지리, 역사 정치와 경제 등에 관해 많은 지식을 획득하고, 1847년 이러한 지식들을 정리하여, 『영환지략(瀛環志略)』이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이 책은 중국 근대에 중국인이 세계 각국의 지리, 역사, 인구, 인종, 민족, 종교, 정치제도, 교육현황과 풍속 등을 소개한 최초의 책으로 중국인들이 외국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쉬지위는 이 책에서 7번이나 아빌 선교사를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빌의 영향이 상당히 중요했던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 책에서 미국의 초대 대통령 와싱톤의 용기와 지략이 중국 삼국시대의 조조와 유비보다 더 훌륭하다고 칭찬하며, 그의 애국애민의 정신은 고금을 통해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놀라운 업적이라고 극찬하였다. 이 책을 통해 청나라 정부의 고위 관리인 쉬지위가 미국과 서방세계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1845년 초에 아빌의 건강이 계속 악화되어 부득이 미국으로 돌아가 치료를 받아야 했다. 4월 3일 그가 뉴욕에 도착했을 때 몸이 너무 연약하여, 걸을 수가 없어 들것에 누워서 배에서 내릴 정도였으니 그의 건강상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짐작이 간다. 그는 장기간 심장병과 폐결핵 등으로 고생하다가, 1946년 9월 4일, 42세의 젊은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 일생을 중국선교에 헌신하여, 결혼도 하지 않고, 자기의 건강까지도 희생하며 오직 중국인들의 영혼을 구하려고 노력하다 하나님 앞으로 간 젊은 선교사의 모습은 중국선교의 역사 속에 영원히 남아 후대 선교사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맺는말
아빌은 중국 근대 최초의 미국선교사의 한 사람으로 중국이 개방하기 전에 미국 선원 신우회 소속의 선교사로 광저우에 도착하였다. 물론 그의 선교사역의 대상이 중국인이 아닌 미국선원들이었지만, 그가 현지에서 중국인들과 접촉하면서 중국선교의 부담과 필요성이 더욱 증가하게 되었던 것 같다. 

비록 아빌은 중국선교에 깊은 사명감을 갖고, 일생을 분투하였지만, 심장병과 폐결핵 등이 늘 걸림돌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중국선교를 위해 광저우,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의 동남아는 물론, 영국과 불란서와 미국 등 구미 여러 나라에 동분서주하며, 중국선교의 비전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가 샤먼에서 활동한 시간은 겨우 3년밖에 안되지만, 그는 샤먼의 선교의 기초를 충분히 확립하였을 뿐 아니라, 중국인들의 세계관을 열어주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특히 구미교회가 중국선교에 참여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마치 땅에 떨어져 죽어가는 한 알의 밀알처럼, 비록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를 통해 맺은 많은 복음의 열매들이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민난지역에 무르익어 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강인규|대만 중원대학교 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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