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oster.jpg) 저우싱츠(周星驰)는 2008년 8월 가난한 노동자 아버지와 아들의 삶을 코믹하게 다룬 <장강7호(長江七號)>를 한국에 선보였다. 아버지 저우티에(周?)는 우연히 쓰레기 더미에서 주워온 정체불명의 외계 생명체인 장난감을 초등학생인 아들 저우샤오디(周小狄)에게 선물했다. 샤오디는 부자 악동인 쥔성(俊生)이 가진 장난감 ‘장강1호’를 모방하여 ‘장강7호’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귀엽고 신비한 ‘장강7호’의 출현으로 평소 친구한테 왕따 당했던 샤오디는 갑자기 주목을 받게 되었고, 주위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긴장과 해프닝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장강7호>는 판타지와 코미디가 적재적소에 배치되었고 멜로와 가정윤리뿐만 아니라 쿵푸까지 어우러진 퓨전 영화로서 저우싱츠 감독 특유의 유머와 기발한 아이디어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쓰레기 더미에서 주워온 낯선 것과의 조우 - 일상 속에서 뜻밖에 발견한 행운과 실망 기존의 영화 속에서는 외계인은 침략자나 괴물의 이미지로 지구인에게 낯선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되었지만 1982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는 지구 소년과 외계인간의 우정을 그려 외계인을 지구를 침략하는 악인이 아닌 인간과 교감이 가능한 동반자로 그린 획기적인 영화였다. 외계 생명체에 대한 이러한 생각의 전환이 <장강 7호>에도 반영되었다. 어린 소년 샤오디가 아버지가 쓰레기 더미에서 주워온 귀여운 애완견처럼 생긴 ‘장강7호’에게 지구를 침략하러 왔냐고 묻는 장면은 관중들에게 웃음을 자아냈다.
샤오디는 외계 생명체인 ‘장강7호’가 선하다는 것을 확인하자 머릿속에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펴기 시작한다. 매일 통학할 때 괴롭히던 사나운 개를 ‘장강7호’가 맘껏 혼내주고, 시험 때문에 고민하던 자신에게 컨닝 선글라스를 만들어줘서 100점을 받게 해줄 뿐만 아니라 평소 자신을 무시했던 차오(曹)선생을 약 올려 준다던지, 슈퍼 운동화를 신고 수영?달리기?축구?높이뛰기의 고수가 되어 체육선생과 일전을 벌여 통쾌하게 이긴다는 상상을 했다. 저우싱츠 감독은 샤오디의 허황된 꿈을 현실과 대조시키면서 모두 물거품으로 만들고 관객으로 하여금 폭소 속에서 순진한 아이의 백일몽이 깨지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도록 했다.
상한 사과와 망가진 선풍기의 원상회복 저우싱츠 감독은 <장강7호>속에서 ‘행운’이라는 것은 허황된 꿈을 실현시켜주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가난한 아버지와 아들은 도시 재개발로 허물어진 무허가 건축물에 거주하면서도 열악한 환경과 처지를 원망하지 않고 가난 속에서도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고 춤추며 손발로 바퀴벌레를 때려잡으며 즐거워하였다. 식사할 때 아들 샤오디가 주워온 사과 반 토막을 먹으려고 하자 아버지는 식사 후에 디저트로 먹으라고 코믹한 멘트를 날렸다.
저우싱츠는 ‘장강7호’를 통하여 부자(父子)의 비참한 생활의 무게를 덜어주었다. ‘장강7호’와 샤오디가 좁은 방에서 춤추며 노는 도중에 ‘장강7호’가 상한 사과를 발견하고 자신의 힘으로 탐스러운 사과로 원상 회복시켰는데 샤오디는 이를 눈치 채지 못한 채 의아하면서 사과를 맛있게 먹었다. 아버지는 여름밤 잠 못 드는 아들을 위해 큰 맘 먹고 돈을 들여 선풍기를 새로 사왔는데 금방 고장이 났다. 좁고 통풍이 되지 않는 방에서 열대야로 인해 이리저리 뒤척이는 부자를 위해 ‘장강7호’는 자신의 에너지를 사용하여 선풍기를 고쳐서 그들로 하여금 시원하게 잘 수 있게 도와주었다. 저우싱츠 감독은 ‘장강7호’가 사과와 선풍기를 원상으로 회복시켜 가난한 부자(父子)의 기본적인 욕구와 필요를 채워주며 고달픈 삶을 따뜻하게 위로하였다.
대인관계의 회복 아들 샤오디가 다니는 귀족초등학교의 악동대장은 가난하거나 못생긴 외모를 가진 친구들을 무시하였다. 그는 작고 볼품없는 남학생과 대식가인 뚱녀를 놀려대고 ‘장강1호’라는 장난감을 과시하면서 유도부 학생을 자기 맘대로 조종하였다. 악동 대장은 평소 가난하고 더러운 샤오디를 무시하고 조롱했지만 코믹한 표정에 살아있는 생물체 같은 ‘장강7호’의 매력에 반해 샤오디와 진정한 친구가 되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샤오디를 좋아하는 뚱녀 메이지아오(美?)와 악동 대장의 부하처럼 지내던 유도부 학생 빠오롱(暴?)도 처음에는 대립적인 관계에 있다가 ‘장강7호’의 출현으로 결국 화해하게 된다.
'장강7호’가 대인관계의 회복을 가져오는 계기를 제공하지만 직접적인 인과관계의 설정은 스토리전개상 미흡한 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저우싱츠 감독이 깨어지고 왜곡된 인간관계를 화해시키려는 흔적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희생(犧牲)과 회생(回生) -자신을 희생하여 아버지를 살려낸 ‘장강7호’ 영화 후반부에서는 아버지 저우티에가 높은 빌딩 공사장에서 일하다 다리가 용접가스통에 묶이는 바람에 추락하여 사망하게 되는 불행한 사건이 터졌다. ‘장강7호’는 병원에 누워있는 아버지의 시체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온몸의 에너지를 발산하여 죽은 육신을 회생시키고 자신은 탈진하여 쓰러졌다.
샤오디는 아버지를 잃은 후 커다란 충격과 슬픔에 빠지고 착한 위엔(袁) 선생님의 위로조차 거부하고 어두운 골방에서 ‘아버지의 부재(不在)’가 가장 큰 고통인 것을 깨닫고 아버지라는 존재가 항상 자신 곁에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 실감하게 되었다. 저우싱츠 감독은 <장강7호> 영화를 통해 관중들에게 비록 아버지가 가난하고 무능력해도 그 존재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워 주었다. 이 영화는 인간이 무엇인가를 더 많이 소유해야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평소 우리 곁에 있는 가족을 비롯한 이웃들과 화목한 관계를 다지며 매순간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시사하였다.
외계 생명체인 ‘장강7호’가 한평생 자식을 위해서 애써온 샤오디의 아버지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희생하는 모습은 마치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모습을 떠오르게 하여 진한 감동을 선사하였다. 아버지를 살려내다가 기력이 다해서 죽을 줄 알았던 ‘장강7호’는 더 많은 외계 생명체를 데리고 오는 장면은 “한 알의 밀알이 죽어서 수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성경의 진리를 투영하여 슬픈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가난한 영웅 - 아버지 아버지 저우티에는 공사장 일용직 인부로 아내가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하다가 세상을 뜨자 채무에 시달리며 공사판에서 노동으로 간신히 생계를 꾸리면서도 아들을 귀족초등학교에 보냈다. 공사장 감독은 그의 이러한 무모한 자녀교육에 대해 신랄하게 비난하였다. 저우싱츠 감독은 비현실적인 부자(父子)의 모습을 코미디 장르에 담아 관객들에게 연민과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영화 속에 나타난 저우티에의 모습은 아버지의 교육열을 보여준 한국영화 <맹부삼천지교>와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유교적인 문화 속에 성장한 부모들은 자녀교육에 혼신의 힘을 다한다. 조선시대 실학자인 정약용은 유배지에 있으면서도 벼슬을 할 수 없는 폐족 집안을 두 아들이 학문을 닦아 가문의 영광을 되찾아 주기를 소망하였다. 중국 위진남북조 시기의 도연명은 <자식을 나무라며(?子)>라는 시에서 자식 교육 때문에 고민하는 내용을 담았다.
雍、端年十三,不?六?七. 옹과 단은 13살인데도 6과 7을 구분하지 못하고 通子垂九?,但?梨?栗. 통자는 9살이 되었는데 배와 밤만 찾고 있구나.
도연명은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먹고 노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자식들 때문에 걱정하는 모습을 시에 표현하였다.
저우싱츠 감독은 가난한 서민의 생활고를 직접 덜어주지는 않지만 그들에게 사랑과 연민을 표시하였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우린 비록 가난하지만 거짓말하지 않고 싸움질하지 않으며,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지 않고, 남의 것에 손을 대지 않지. 열심히 공부해서 사회에 꼭 필요한 인재가 돼야해”라고 훈계하며 배운 것이 없어 공사판을 전전하는 자신처럼 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영화 속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 말을 자주 반복했지만 순진한 부자가 과연 냉혹하고 부조리한 사회 현실을 헤쳐 나갈 수 있을지 관객으로 하여금 걱정이 앞서게 한다. 아들 샤오디는 학교에서 자신의 꿈을 말할 때 가난한 사람이 되겠다고 밝혀 웃음을 자아냈다. 샤오디는 “자존심을 지키고, 거짓말하지 않으며, 싸우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면 설사 가난해도 어디를 가든 존경을 받을 겁니다.”라고 강조하면서 자신의 아버지를 낙관적인 서민 영웅으로 묘사하였다.
스승의 권위 앞에 당당한 부자(父子) 저우싱츠 감독은 영화 속에서 부조리한 스승의 권위를 부정하고 조롱하였다. 그는 영화 <서유기>에서도 손오공의 스승인 삼장법사를 귀여운 수다쟁이로 변모시켜 풍자한 적이 있다. 샤오디는 자신을 무시한 차오 선생과 체육 선생의 권위에 과감하게 도전하였다. 영화 속에서 차오 선생을 평소 허영심과 결벽증에 차 있는 인물로 묘사하였다. 차오 선생이 만년필을 떨어뜨리자 샤오디가 주워주려고 하자 더럽다고 야단법석을 떨면서 자신의 하얀 손수건으로 주웠다. 그러나 감독은 깔끔한 차오 선생이 교실에서 코를 후비다 코딱지를 몰래 입에 넣는 모순된 장면을 연출하여 조롱하였다. 샤오디가 시험 도중에 컨닝 선글라스가 발각되자 차오 선생한테 던졌는데 폭발하여 선생의 몰골을 망쳐 놓았다. 감독은 차오 선생의 이중적인 모습과 우스꽝스런 모습을 동시에 앵글에 담아 선생의 그릇된 권위를 적나라하게 풍자하였다. 샤오디는 몽상 속에서 ‘장강7호’ 가 만들어준 슈퍼 운동화를 신고 체육선생의 높이뛰기 최고 기록을 단숨에 깨고, 체육 선생님과 한판의 결투를 벌이기도 하였다.
아버지는 가난하지만 세상에서 기죽지 않고 자신감 있게 살아가려고 노력하였다. 덥수룩한 수염과 희끗한 머리카락에 구겨진 양복을 입은 아버지는 자신의 사회적인 지위를 고려하지 않고, 단정하고 어여쁜 위엔 선생님에게 당당하게 구애했다. 저우싱츠 감독은 현실이 아닌 몽상의 공간에서 사람간의 갈등과 약자의 고민을 해소시켜 주었고 사회적 약자의 당찬 면모를 현실 공간속에서 표현했다.
쿵푸와 복수의 몽상 저우싱츠는 <신정무문> · <쿵푸허슬> · <소림축구> · <소림소녀> 등 영화에서 리샤오롱(李小龍)의 영향을 받아 쿵푸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여주었다. 2001년 <소림축구>에서 축구와 쿵푸의 특이한 결합으로 흥행몰이에 성공하였고 2004년 <쿵푸허슬>은 <타이타닉호> 다음으로 홍콩영화사상 최다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되었다. 쿵푸는 원래 복수하는 도구로 사용되어 잘못을 바로잡고 약자의 억울함을 분출하는 탈출구였다. 그러나 <장강7호>에서는 악인에 대한 징계로 쿵푸를 사용하는 것을 거부하고 복수는 몽상에 불과하다는 새로운 인식을 불어넣고 화해를 시도하였다. 샤오디는 ‘장강7호’가 사나운 개를 쿵푸로 복수하는 통쾌한 장면을 상상하였고, 슈퍼 운동화를 신고 체육선생과 결투를 벌이다 하늘 높이 치솟아 ‘장강7호’ 얼굴 모양의 흰 구름을 보고 공중에서 두발로 새를 살짝 밟으면서 두 손을 합장하는데 이는 <쿵푸허슬>을 패러디한 것이다.
저우싱츠 감독은 정직과 성실·사랑과 인내 같은 미덕을 지닌 낙관적인 사람은 축복을 받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장강7호>에서는 선에 대한 권면은 있지만, 악에 대한 직접적인 징계는 자제하고 따뜻한 인도주의와 화합이 넘치는 이상(理想)적인 사회를 꿈꾸지만 가난한 부자(父子)의 현실적인 좌절과 어려움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저우싱츠(周星驰)식 해피엔딩 코미디 스티브 닐은《세상의 모든 코미디》라는 책에서 “해피엔딩은 코미디의 가장 중요한 때론 유일한 관행이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저우싱츠 감독은 기력이 다해 사라졌던 ‘장강7호’가 인간을 도와줄 더 많은 외계 생명체를 데려 온다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려 미래를 낙관적으로 내다보았다.
동방의 할리우드라고 부르던 홍콩에서 ‘쌍주일성(雙周一成)’이라는 저우룬파(周潤發), 저우싱츠(周星驰), 청롱(成龍)은 관객 동원의 핵심코드였는데, 그중에서도 저우싱츠는 문화현상의 해석 대상으로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저우싱츠는 홍콩영화에서 ‘우리터우(無厘頭)’라는 문화를 창출하였는데, 이는 비논리적이고 과민하며 소심한 연기를 말하는 것으로 난센스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홍콩정부 고위관리 장민이(張敏儀)는 저우싱츠에게 “당신은 수많은 홍콩 사람들이 기쁘지 않을 때에도 웃을 수 있게 해주었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한 적이 있다. 홍콩은 영국의 식민통치와 일본의 침략 및 중국대륙으로의 반환이라는 굴곡진 역사를 겪었다. 다양한 정치 사회적 변혁기를 경험한 홍콩에서는 유독 코미디 영화가 강세를 보였다. 인구밀도가 높고 비좁은 영토에서 빠른 템포의 생활을 영위하는 홍콩의 소시민들은 코미디에 애착을 갖게 되었고 저우싱츠의 코미디는 그들에게 삶의 안식처와 같은 존재였다.
저우싱츠 감독은 <장강7호>를 계기로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나 저속한 문화상징의 양극 논쟁에서 잠시 벗어나 색다른 행보를 모색하게 되었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가족과 친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동시에 사회주변의 약자에 대한 연민과 관심을 호소하였다. 2009년 기축년(己丑年) 새해를 맞아 글로벌 경제위기로 어깨가 처진 가장(家長)들의 입가에 여유와 웃음이 회복되기를 기대한다.
김영철| 가톨릭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