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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8.30 통권 109호     필자 : 강진구 프린트   이메일 
[중국 영화]
펑 샤오강 감독의 ‘집결호(集结号)’
- 중국 인민이 원하는 전쟁영웅을 만나다

이념을 가리고 전쟁을 보여주다
<야연(夜宴)>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펑 샤오강(冯小刚) 감독의 영화 <집결호>는 그동안 중국 상업영화들이 다루기를 꺼려했던 중국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전쟁블록버스터 영화다. 중국공산당 정부가 확고히 중국을 지배하기 이전에 벌어진 국민당과의 전쟁과 한국전쟁에 이르는 중국의 현대역사란 초기 공산주의 사상이 극명하게 전개된 시기로서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경우 이념 지향적이라는 판단을 내리기가 십상이다. 특히 전쟁영화의 경우 결국에 가서는 그들이 도대체 왜 피를 흘리며 싸워야 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는 까닭에 집권정부가 추구하는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세계영화사를 돌아보면 현대사를 배경으로 하는 전쟁영화의 상당수는 관객들로 하여금 현 사회체제에 순응하도록 계몽하는 성격을 지닌 것이 일반적이었다. 영화의 혁명가라고 불리웠던 S.M. 에이젠슈쩨인의 <전함 뾰촘킨>은 1905년 실제 일어난 뾰촘킨호의 선상반란과 이어지는 짜아르군대의 무차별적인 양민학살, 그리고 이에 대한 군대의 저항을 다루고 있지만 혁명가 레닌은 이 영화에 대해서 10월 혁명의 선도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한 것과 같다. 즉 러시아혁명의 정당성을 관객들에게 고취시키고 아울러 사회주의 사상의 의미를 전달하려는 목적이 영화 안에는 내재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집결호> 역시 중국공산당이 그들의 사상을 널리 알리고자 만든 선전용 영화일까? 정답은 ‘그렇지 않다’ 이지만 한편으로는 중국공산당 정부에 우호적으로 작용했다는 평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제작의 목적은 현 중국정부의 이념을 전파하려는데 있지 않았지만 영화는 자연스럽게 중국공산당의 가치가 한 전쟁 영웅의 위대한 행적을 통해서 메시지로 전해져 옴을 느낄 수 있게 한다. 

펑 샤오강 감독이 중국 인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감독이란 사실은 <집결호>가 전쟁영화란  외형적 구조 밑에 중국인민의 이념과 가치를 잘 감싸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대형 전쟁영화답게 치열한 전투장면과 그 속에서 꽃피운 전우애와 충성심은 국내외 어느 관객이라도 쉽게 감동시킬 수 있는 외형적인 구조로 등장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주인공이 참여하는 두 가지의 전쟁, 즉 국민당 정부군과의 전쟁과 한국전쟁은 사회주의와 민족주의를 포괄하며 현재 중국이 가지고 있는 이념을 지지하는 중국공산당의 가치를 내재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며 환호하는 것은 물론 영화 안에 시점으로 등장한 역사와 직간접으로 연계되어 있는 한국인조차 이 영화에 대해서 의미 있는 시선을 던지는 것은 어디까지나 펑 샤오강의 세련된 연출력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영화가 2007년 제 12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식으로 상영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사회주의적 영웅관을 엿보다
<집결호>는 1948년, 중국 인민해방군과 국민당 정부군 사이에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문하전투’를 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인민 해방군 9중대장인 구지디(장한위)는 노련하고 용감한 군인이지만 이미 이전 전투에서 많은 부대원들을 잃고 자신을 포함 오직 48명의 소부대로 전락한 실정이다. 그러나 전력의 보강 없이 9중대에게 맡겨진 임무는 막강한 전력을 보유한 국민당 정부군의 진격을 무슨 일이 있어도 저지해야하는 일. 단 집결호가 들릴 때에는 후퇴해도 좋다는 단서가 붙어있지만 말이다. ‘집결호’는 부대의 퇴각을 명령하는 나팔소리로 이것은 군의 공식 명령으로 간주 되었었다. 

구지디는 소수의 병력이지만 똘똘 뭉친 전우애와 용맹을 의지 삼아 적의 탱크를 격파하는 등의 혁혁한 전공을 세운다. 그러나 적의 비오 듯 쏟아지는 총포탄 세례를 받으며 끝내 한두 명씩 부대원들은 쓰러지기 시작하고, 급기야는 죽어 가는 병사로부터 집결호를 들었다는 얘기까지 듣고 만다. 대포 소리에 청력의 일부를 상실한 구지디는 자신의 과오로 퇴각명령인 집결호를 듣지 못했고, 이 때문에 자신의 부하들을 모두 잃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히고 만다. 일단 죽은 병사들의 시체를 모두 참호 속으로 옮긴 뒤 자신의 본대로 합류하기 위해 떠나고 말지만 그는 부하들에게 씻지 못할 죄를 저질렀다는 자괴감에 평생을 고통스럽게 지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집결호에 나타난 사회주의의 영웅적 이미지는 할리우드의 영웅들과 다소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도 개인이 아닌 집단의 영웅화란 점에서 집결호는 서구의 개인주의적 영웅관을 극복한다. 전투가 단체 게임의 성격을 갖는다 하더라도 할리우드가 내세우는 전쟁영웅은 개인 숭배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프랭클린 샤프너 감독의 1970년 작품 <패튼 대전차군단>이 그랬고 멜 깁슨이 주연한 베트남 전쟁 영웅 영화 <위 워 솔저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위 워 솔저스>가 <집결호>의 구지디 처럼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었지만 그는 부하들과 달랐고 범접하기 힘든 위엄을 드러냈었다. 그러나 구지디는 계급만 중대장일 뿐 사병들과 동일하게 행동하며 전투를 함께 하는 부대원들 중 단지 생존한 인물일 뿐이다. 오히려 용감하게 죽어 간 부하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에 그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으며 영화의 후반부 상당부분이 이것을 위해 할애되고 있다. 

구지디가 개인적으로 유일하게 영웅화되고 있는 장면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정찰 도중 지뢰를 밟은 동료 간부를 살리기 위해 위험을 무릎 쓰는 일 뿐이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집결호를 기다렸지만 국민당 정부군의 엄청난 공격 가운데서도 아무도 도망치는 사람 없이 끝까지 진지를 사수한 47명의 병사들이 갖는 집단적 상징성이다. 영화를 본 중국인들이 바라고 또한 중국정부의 이념제공자들이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은 바로 전쟁영웅은 보통군인과 다르지 않으며 중국인 한사람 한사람이 47명의 용감한 부대원들처럼 그 집단의 일원으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모두가 용감하고 희생적인 영웅이 되는 사회를 중국은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중국정부가 조국을 위해 죽기까지 싸운 전쟁영웅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무엇일까? (영화는 전쟁영웅을 소홀하게 대하는 중국정부를 비판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주인공 구지디가 바로 중국정부의 대변인 노릇을 하고 있지 않은가! 부하병사들이 전쟁영웅이 아닌 단순 실종자로 처리된 것에 대해 한편으로 책임감을 느끼고 또 한편으로 분노한 구지디는 탄광지대로 변해버린 전투현장을 삽 한자루로 뒤지며 부하들의 시체를 모아두었던 참호를 찾는데 온 힘을 다 쏟았다. 광부들이 병사들이 썼을 철모를 요강대용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부하병사의 애인이었을 여성의 결혼까지도 책임져주는 행동은 관객들이 중국 인민군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내게 만드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불지 않은 집결호, 그래서 그들은 더욱 빛났다
영화 <집결호>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는 ‘오해가 일으킨 진실의 엿보기’에 있다. 구지디는 집결호를 듣지 못한 이유로 부하들을 끝내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는 자책감으로 남은 삶을 살아야했지만, 그 결과는 영웅의 탄생을 세상에 알린 일이었다. 만일 한창 전투 중에 집결호가 울렸다고 판단해서 퇴각했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안전한 곳으로 물러나고 싶은 것이 인간의 심리다. 집결호가 울렸다고 말한 병사는 빨리 후퇴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환청을 경험한 것일 수도 있다. 환청을 빌미로 퇴각했다면 목숨은 구했을지 모르지만 영웅의 조건에는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집결호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퇴각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다 부하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면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그것은 충성된 전장의 영웅으로 칭송되기 보다는 지휘관의 과욕이 불러일으킨 비극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영화 속 ‘집결호’는 운명과 같은 것이다. 삶과 죽음을 오가는 전장에서 ‘집결호’는 불수도 있고, 안 불수도 있다. 아니 퇴각나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못들을 수도 있다. 어디 인생살이 가운데서 예상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며, 때마다 내리는 판단이 정확해서 그대로 되는 일이 또한 얼마나 있을까? 구지디와 병사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명령에 따라 죽기까지 싸우는 일이었다. 이것이 진실이며, 집결호 여부에 상관없이 그들의 삶을 빛나게 하는 것이다.

영화 <집결호>가 이념과 역사를 떠나 그리스도인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내 삶이 죽을 만큼 힘들 때에도 하나님의 ‘집결호’는 들리지 않을 수 있다. 집결호를 부느냐 마느냐의 권한은 우리에게 있지 않다. 그러나 하늘로부터의 집결호(하나님의 음성)가 들리지 않는다고 섣부르게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확하게 하나님의 음성을 인식하고 행동하면 더 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지금 그대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옳다. 어차피 우리가 소망하는 면류관은 세상의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전15:58)   


 

강진구| 영화평론가 · 한동대언론정보문화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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