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커신이 대형역사물을 만든 이유? 천커신은 현대 멜로드라마를 가장 잘 만드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금지옥엽(金枝玉葉)>(1994), <첨밀밀(甛蜜蜜)>(1996)등을 통해 사랑하는 남녀관계에서 일어나는 연인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능력이 탁월하고, 특히 운명적 사랑에 대한 감성적 성찰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나다. 그의 가장 최근작이라 할 수 있는 <퍼햅스 러브(如果愛)>(2005) 또한 멜로드라마를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결합시키고 이전의 소품수준에서 벗어나 크기를 대형화했다는 점만 다를 뿐이지 현대를 살아가는 연인들의 사랑이야기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초대형 중국 전쟁 역사물을 들고 나온 것이다. 역사물 속에서도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룰 수 있지만 전쟁 역사물에 대해서 관객이 기대하는 바는 아무래도 장수들의 화려한 액션과 수많은 병사들이 치열하게 싸우는 스펙터클한 영상인 만큼 멜로드라마가 주 종목인 감독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하기 쉽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한 영화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중국 시대극 중 단 한편도 사실적인 영화가 없다는 점을 들어 사실적인 시대극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토로했었다. 여기서 그가 말한 사실 그대로의 시대극이란 중국 역사를 과대 포장하여 심오하고 좋은 것만을 보여주려는 의도를 벗어나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마도 그가 이 말을 할 때 생각했던 영화가 장이머우(張藝謀)감독의 <영웅(英雄)>과 같은 영화가 아니었을까. 권력자 중심의 사관을 가지고 과거 역사의 치부를 모두 합리화 시켰던 영웅중심적인 사고를 그려낸 역사물에 대한 비판의식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천커신 감독의 <명장>은 초대형 액션이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다는 점에서는 표면상으로는 과거의 역사물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액션 그 자체에 강조점을 두기 보다는 그 속에 존재하는 인간(영웅이 아닌)으로서의 본질과 심리를 깊이 파고든다는 점에서 그의 의지는 영화 속에 확고히 투영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영화 속의 주인공, 즉 영웅들의 이미지를 신격화하기 보다는 개인의 욕망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마는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고 주인공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던 민중들을 향한 새로운 의식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돌연 장르를 바꾼 천커신 감독의 영화의지는 높이 평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 중국의 대중영화시장의 특성 또한 소품위주의 멜로드라마로부터 그를 벗어나게 만든 주요 원인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어떻게든 중국인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일 수 있다는 뜻이다.
또다른 이유를 찾는다면 첫째는 중국문화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린 복제판 시장으로부터 중국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초대형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영화가 개봉되기도 전에 시장에 유통되는 복제판 DVD로는 애초에 영화 제작 당시 최첨단 시설을 갖춘 극장에서만 즐길 수 있는 기술의 진수를 전혀 느낄 수 없다. 실감나는 영상이나 가슴을 울리는 음향효과 등을 전혀 제공받지 못한다. 따라서 관객들이 제대로 영화를 본다는 느낌을 받으려면 스토리중심의 아기자기한 멜로드라마 보다는 눈을 만족시키는 거대한 규모의 스펙터클 역사물이 제격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는 관객들이 지불하는 관람료 이상의 가치를 제공해주어야 한다는 판단에서 초대형 역사물시장에 뛰어들었다고도 볼 수 있다. 중국이 지난 몇 년간 연 10% 이상의 초고속성장을 해왔지만 소득의 불균형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고 여전히 소득수준이 낮은 상당수의 계층에서 영화 관람료는 부담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05년 세계은행(WB)이 발표한 나라별 총소득(GNI)에 따르면 중국의 국민총소득은 2조2638억달러로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를 누르고 세계 4위에 등극했다. 그러나 1인당 연간소득은 불과 1740달러로 183개국 가운데 128위에 머물렀다. 실질적으로 중국 중소도시의 노동자들의 한달 월급은 1천 위안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극장에 직접 가서 영화를 보려면 30위안은 줘야 한다(같은 영화라도 영화관마다 다르고 대도시의 새로 지은 영화관은 이보다 비싸다). 감독이나 제작자로서는 비싼 돈을 내고 영화를 보러 온 관객에게 볼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만족감을 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줄거리만 알면 다 본 것 같은 영화가 아니라 다른 것으로는 결코 기대할 수 없는 새로운 시각적, 정서적 경험을 상품화 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중국인 영화관객의 70%가 <황후화>나 <상성(傷城)> 같은 대작들에 몰린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극장보다는 복제판 DVD에 의존하는 중국영화시장의 형편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면 중국정부의 영화정책도 크게 한몫하고 있는 것 또한 분명하다. 영화관에 걸리는 영화들은 모두 정부의 검열을 받아야 하는 까닭에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은 장면들은 삭제되어 나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홍콩이나 대만에 들여온 무삭제 원본을 복사한 경우 오히려 극장에서는 볼 수 없는 원래의 영화를 볼 수 있는 까닭에 극장 보다는 복제판 DVD를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명장>만 하더라도 기독교사상이 작용한 태평천국의 난을 배경으로 한 까닭에 자연스럽게 묘사되는 십자가와 기독교 사상에 입각한 표현은 극장에서는 볼 수 없었다.
왜 태평천국운동(太平天國運動)이었을까? <명장>은 19세기 중엽에 일어난 태평천국운동을 배경으로 펼쳐진 전쟁 역사물이다. 부패한 청나라 조정에 반기를 든 농민들의 저항이 전국적으로 벌어졌고 이 반란을 진압하는 세 명의 장수가 영화를 이끌어간다. 청나라 장수 출신의 방청운(이연걸)은 전투에서 패배한 후 산적들과 조우하여 그들의 일원이 된다.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둔 조이호(유덕화)와 그를 충성되게 따르는 강오양(금성무)과 의형제를 맺고 한패가 된 방청운은 괴군에게 약탈당하는 마을을 지켜보며 군인이 되어 정정당당하게 살 것을 주장하며 마을 남자들과 함께 청군의 일원이 되어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하는 전쟁에 나서게 된다.
<명장>의 스토리는 남성중심의 용맹한 전쟁이야기와 토착세력의 농간에 희생당하는 주인공의 비극이 한 축을 이루고, 세 명의 주인공이 겪는 형제애와 조이호의 여인인 연생(서정뢰)을 놓고 벌어지는 심리극이 또 한 축을 형성한다. 형식상 이 두 가지 축은 중국영화에서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중국의 대형영화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태평천국의 난을 간접적으로나마 다룬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 그 이유는 천커신이 이 영화를 만든 이유에서 다시 찾을 수 있다. “역사든 문학이든 무엇이든 우리는 유교에 짓눌려 많은 자유를 억압당했다. 우리는 우리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해본 적이 없다. 실제보다 뭔가 나은 것으로 포장해서 말하곤 했으니까.”
1921년 중국공산당이 출범한 이후 사회주의 이념이 중국을 지배한지 이미 오래되었고 1966년 시작된 문화대혁명 당시는 공자의 묘까지도 파헤치며 과거 유교의 역사와 단절을 꾀했는데 갑자기 천커신이 유교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영화 <명장>을 통해 판단컨대 그가 생각하는 유교란 지배층이 민중을 지배하며 권력을 유지하도록 만드는 부조리한 이념 정도로 여기는 듯하다.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하기 보다는 피지배계층 마저도 현실의 지배권력에 충성하게 만들어 권력을 보다 굳건하게 만드는 역할만을 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국역사에는 소수의 부패한 권력층으로부터 벗어나 민중중심의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두 번의 종교혁명이 있었다. 첫 번째는 서기 184년 후한(後漢)시대 장각에 의해서 일어난 황건적의 난(黃巾賊亂)이다. 중국 최초이자 최대규모의 농민의 난이었지만 하늘로부터 태평청령서(太平淸領書)를 받아 세상을 구하고자하는 종교(도교)혁명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 도교에서 장각은 메시아적 인물로 묘사되고 있으며, 선행과 참회를 강조하는 등의 윤리적 성격도 갖추고 있었다. 두 번째가 바로 1851년에서 1864년까지 중국을 뒤흔들었던 홍시우췐(洪秀全)이 일으킨 태평천국의 난이다. 태평천국의 난은 기독교인들이 일으킨 농민의 난으로 알려져 있다. 홍시우췐과 그를 따르는 농민들이 명확히 기독교의 사상을 이해한 가운데 혁명을 일으켰다고는 보기 어렵지만 우상숭배를 일삼는 청조를 타파하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구현하려했다는 점에서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명장>의 천커신은 중국의 영화대중들이 그동안 잊고 있었던 기독교적 성격의 농민혁명과 이를 진압하는 영웅들을 통해 민중의 역사가 실재했었음을 알리는 동시에 영웅의 허상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려 했던 것이다.
영웅의 몰락 천커신의 생각에 중국영화 속의 영웅들은 철저히 유교적이었으며 지배적이었고 억압적인 존재들로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그는 <명장>을 통해 전통적 관념의 영웅관에 대해 드러나지 않는 비판을 가했다. 중국의 영웅들은 철저히 남성주의에 입각한 형제애를 기반으로 삼고 있다. 삼국지에 나타난 유비와 관우 그리고 장비 사이에 이루어진 도원의 결의(桃園結義)는 중국 영웅들의 표상이다. 영화 <명장> 역시 방청운과 조이호 그리고 강오양 사이에 죽음을 맹서한 결의가 이루어진다.
“오늘 이 자리에서 피로써 의형제를 맺는다. 목숨을 걸고 맹세하노니 우리를 해치는 자는 목숨으로 갚을지어다. 우리 중 형제를 해치는 자 또한 목숨으로 갚을지어다.”
영화 속에서 여러 번 인용되는 이 대사는 사나이들의 멋진 결속을 드러내는 듯 하지만 그들이 형제애를 맺는 방식을 가만히 살펴보면 이기적인 허세에 불과하다. 자신의 피를 내어 맹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각각 죽임으로써 형제애를 맹세한다. 이 영화의 원제목인 <투명장(投名狀; 원래는 투항문서를 뜻함)>이 수호지의 임충이 사람의 목을 가져감으로써 양산박(梁山泊)에 들어갈 수 있었던 일화를 차용했음을 알 수 있지만, 이것은 멋진 의식이 아니라 힘을 숭상하는 남성들의 이기적이며 야비한 행동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는 천커신 감독이 영웅들의 위선에 대해 은근슬쩍 메스를 가하고 있음을 빨리 눈치 챌 필요가 있다.
방청운은 자신의 군대가 점령한 성안의 여자를 겁탈한 두 명의 부하에 대해서는 주변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사형을 집행할 만큼 윤리적이고 준법적인 인물로 나타나는 듯 하지만 곧 이어서 쑤저우(蘇州) 성문을 열고 투항한 4천명의 태평천국의 군인들을 약속과 다르게 몰살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더군다나 피의 맹세를 나눈 조이호의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사이로 변하고, 끝내 청조의 이간질에 넘어가 세 영웅은 서로 간에 칼을 겨누고 죽음으로 서로를 이끄는 몰락의 길에 서고 마는 것이다. 칼싸움 잘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판단에 정당성만을 부여할 줄 아는 것이 영웅이란 말인가! 영웅은 결코 완벽한 인물도 이상적인 인물도 아니다.
그에 비해서 쑤저우 성을 굳게 지켰던 태평천국의 황장군은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지금까지 나타난 중국의 고전적 영웅과는 다른 기독교적 영웅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자기희생을 통해 백성을 살리려는 그리스도 정신의 영향을 받은 영웅의 모습이었다. 긴 머리를 가진 황장군의 이미지가 예수님과 닮은 것도 이 때문이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황장군을 설득하러 들어간 조이호는 황장군과 함께 물에 빠지게 되고 쑤저우 성을 나온 뒤로 생각이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기독교의 세례의 의미나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받은 충격과 변화의 모습으로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 전쟁사극에 십자가 목걸이가 나오고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한 언급이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명장>은 분명 새로운 영화다. 그 새로움은 기독교가 영웅의 편이 아니라 민중의 편에 서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것과 더불어 중국역사 속의 기독교가 얼마든지 대중적으로 묘사되고 의미있게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데 있다. 앞으로 중국의 기독교 영화 탄생을 기대해 봄직하다.
강진구 ∣ 영화평론가 ․ 한동대언론정보문화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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