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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28 통권 106호     필자 : 정바울 프린트   이메일 
[선교나침반]
실크로드의 허리, 신장(新疆)

신장 이슬람 이해를 돕기 위해서 지난 호에 중국 이슬람 속의 신장 이슬람을 다루었다. 언제나 나무 한 그루에 집중하기에 앞서 그가 속한 숲 전체의 환경을 살피는 것이 필수적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같은 소수민족을 대상으로 선교를 하더라도 중국 속의 부분이라는 그림을 갖고 접근하는 것과, 오직 대상 민족만을 독립된 조각으로 간주하여 접근하는 것과는 그 접근방식과 비전에 있어 큰 차이가 있는 것을 본다. 우리는 세계 속의 중국, 중국 속의 소수민족이라는 총체적인 큰 그림을 품고 개인의 사역에만 집중되는 이기적인 사역보다는 하나님 나라 확장이라는 큰 그림 속에 사역의 방향성과 사역자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번에는 위구르족을 중심으로 신장에 관한 총체적인 그림을 그려 보고자 한다.

신장의 민족 구성과 종교적 배경
위구르족(維吾爾族)과 한족(漢族) 등 13개 주요 민족을 포함, 전체 47개 민족으로 세분되는 다민족이 더불어 살아가는 중국 서북의 신장은 다양한 문화와 종교로 구성된 잡채를 연상케 한다. 단일문화권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나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겸손함과 지혜, 그리고 지배가 아닌 성경적인 섬김의 자세가 요구되는 지역이다. 전통적으로 민족 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지역으로서 특히 주체 민족인 한족과 원주민을 자처하는 위구르인들 간의 갈등이 첨예하다. 이로 인해서 근․현대 역사 가운데 크고 작은 유혈 충돌이 일어났고 지금도 올림픽을 계기로 정치와 종교적 탄압이 가중되는 가운데 있다.

 

동서의 시대별 최첨단 문화의 교류지역으로서 문화적 번성을 이루었던 신장은 역대 왕성했던 세계 종교들이 모두 거쳐 간 지역이다. 배화교(拜火敎:조로아스터교)와 마니교(摩尼敎)의 영향으로 일찌감치 선과 악이 대립된 이원론적 세계관이 정착 됐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인도 다음의 불교 성지로 간주될 정도로 고대 신장(서역)은 불교가 왕성한 지역이었다. 위구르 농민들은 자신들이 태초부터 무슬림인 것처럼 주장하지만 실제로 신장 곳곳에는 여전히 수많은(550여 개) 불교 유적들이 남아있어 일본 인류학자들을 오래전부터 유혹해 오고 있다. 신장의 불교는 서기 전 80년 경 인도 캐시미르로부터 남신장(南新疆) 허티엔(和田)을 통해 소승불교가 들어왔다. 서기 2세기경에는 대승불교가 실크로드를 통해 신장 각지에 퍼지게 되었으며 서기 3세기 후기가 되었을 때는 전 신장에 불교가 유행될 정도로 번성하였다. 4~5세기 위티엔(지금의 허티엔 일대)과 쿠차(庫車) 지역에 불교가 왕성하여 서역의 불교 중심지로서 쌍벽을 이루었다. 당나라 시대에는 고창(지금의 투루판 일대), 위티엔, 쿠차 지역이 3대 불교 중심지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0세기 중엽 이슬람 전파로 사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불교는 점차 서역에서 쇠퇴하었다. 

위구르족의 민족사 개략
동돌궐족(지금의 몽골지역, 신장은 당시 서돌궐족 지역)이 쇠퇴하자 744년 오르혼강(몽골 북부를 흐르는 강, 전체길이 1,124㎞) 기슭에 도읍을 정하고 위구르제국을 건설하였다. 약 100년이 지난 840년 동투르크스탄에서 진출한 키르키즈와 약 40년간의 전쟁 끝에 멸망당했다. 키르키즈에 의해 멸망하기 전까지 위구르인의 조상인 회골인들은 돌궐문자에 마니교를 국교로 삼았다. 제국이 붕괴된 뒤 위구르인은 남하하여 세 지역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지금의 깐수(甘肅) 신장 북부의 투루판(吐魯番) 남부 카스(喀什)지역이다. 각 지역에서 개별적으로 왕국을 건설하였다. 신장 지역의 두 왕국은 13세기 초, 1209년 몽골의 징기스칸에 의해 점령되었다. 840년 위구르제국이 멸망한 후 당나라와의 교류를 통해서 위구르인들은 내지의 중국 문화의 영향을 더 적극적으로 받게 되고 북방 유목 민족으로는 처음으로 정착 도시를 건설하였다. 생업은 목축업에서 점차 농업으로 전환되어갔다. 이 과도기는 현대 위구르인들의 사상 체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전환기였을 것이다. 서역으로 이동한 위구르인은 소그드 문자를 기초로 하는 위구르 문자를 사용하였다.

위구르족의 한민족(韓民族)과의 교류
중국의 원나라 시대 한국의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고려가 몽골의 간섭을 받으면서 몽골 관리들이 당시 행정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중앙아시아계의 무슬림들을 대거 수행하도록 하였다. 고려사에서 등장하는 회회(回回)인은 주로 투르크계 위구르인들을 의미하는데 당시 몽골이 고대 위구르 문자를 공식어로 채택하고 재정과 교역 행정 업무의 대부분을 위구르인이 관장하도록 했다. 한국의 오늘날 덕수장씨의 시조로 알려진 회회인 삼가(三哥)는 1274년 고려 충열왕비가 된 원나라 공주의 시종관으로 고려에 와서 높은 관직에까지 올랐던 사람으로 충열왕으로부터 장순룡(張舜龍)이라는 이름을 하사 받았고 고려 여인과 결혼해서 한민족에 동화된 무슬림이었다.

당시 고려에 왔던 위구르인들 가운데는 원나라의 통역관으로 활동한 사람들도 많았는데 지금의 개성에 타운을 이루고 사원도 건립하여 살았다고 한다. 조선 초에는 사역원(司譯院)의 외국어 시험 과목에 위구르어 연수 과정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글 학자 3인 중에 위구르어가 능통한 학자도 있었다. 최근 신장의 위구르족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한국 드라마를 열정적으로 시청한다. 드라마를 통해서 그들이 이해하는 한국인은 경제적으로 발달했으면서도 대인 관계에 질서가 있고 서로 존중하며 특별히 전통문화가 현대문명과 조화를 이룬다는 면에서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오랫동안 이슬람에 젖어 살아온 듯한 그들이 드라마를 통해서 공감하는 한민족과 그들의 투르크 민족으로서의 문화적 정체성의 교차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위구르인들은 정체성의 과도기에 있다고 할 수 있고, 개인별 정체성의 차이를 분류하자면 전통적인 투르크 민족적 정체성, 이슬람 근본주의적 정체성, 한족화된 정체성 등으로 나누어진다. 그러한 그들이 마치 향수병에 걸린 듯 한국 드라마를 통해 그들 속에서 흐려진 고대 전통문화의 뿌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한민족(韓民族)과 신장 위구르족의 교류 역사를 볼 때 서로 멀고도 가까운 민족이라 할 수 있다.

위구르족 이슬람화 촉진의 시대적 요인
위구르족 종교 역사를 보면 궁금해지는 것이 하나 있다. 그렇게 오랫동안 다신교를 숭배하던 민족이 전쟁의 강압이 있었기는 하지만 어떻게 그다지 길지 않은 세월을 통해 남한의 16배나 되는 광활한 지역이 일신교로 강화될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중국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위구르족 가운데 이슬람화가 촉진된 이유는 첫째, 이슬람이 전파되기 전까지 이미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불교가 쇠퇴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인도 다음의 불교 성지로 여겨졌던 이곳 불교가 쇠퇴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당시 사회, 경제적 상황에 대한 불교의 적응력과 생명력의 취약함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들의 선교에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불교가 사회적 적응력이 약화됨으로 배척을 당한 것처럼 복음도 사회적 적용력이 미약한 상태로 시대별 적응력을 배양하지 않은 전파는 그 뿌리가 깊을 수 없다는 것을 경고한다. 현실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복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불교의 쇠퇴 원인이 표면적으로는 강압에 의한 것으로 보이나 민중의 심리 깊은 곳에 자리잡기까지는 단순히 외적인 영향만으로 해석할 수 없다. 당시 사회 심리적 요인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다. 당시는 무역과 상업의 중요성이 강조되던 시대였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자세보다는 현실도피적인 수양 중심의 불교는 이미 시대의 필요에 부응하지 못하는 유물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것은 복음이 시대적 변화에 적응력을 갖추고 그들의 문화 속에 깊이 뿌리 내릴 수 있도록 전략적이고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복음은 시대적 한계를 넘어서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단순히 사상의 공백을 채우는 또 하나의 신선한 이념이 아니라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나타나는 능력이 나타나야 한다. 단순히 교리 공부만으로는 그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둘째, 신장 당시 사회관계의 변화에 대해 상대적으로 시대에 부합하는 이슬람의 적응력과 위구르족 가운데 성행하던 무역업 또한 이슬람 전파를 촉진시켰다. 셋째, 원나라가 지배하던 시대 각 민족에 대한 종교적 개방 물결을 따라 3차에 걸친 집단 개종의 도약의 기회가 있었다.

이슬람화가 위구르족에게 끼친 영향과 의의
본래 유목생활 기질로 인해 타문화권에 대해 개방적이던 문화적 성향이 배타적인 이슬람의 유일신 사상으로 무장되면서 기존의 민족 전통문화에 대한 것 뿐 아니라 타문화에 대해서도 배타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으로 변질되었다. 또한 장기간의 불교영향으로 도전적인 삶의 자세보다는 체념적이고 회의적이던 성향이 이슬람의 숙명론과 맞물려 서민들 속의 민족적, 진취적 의욕은 빠르게 하향세를 걸어 왔다고 볼 수 있다. 다양한 혼혈 민족으로 구성된 회족의 새로운 민족 규모로의 태동에 이슬람 사상이 핵심적 정체성을 제공한 것과 같이 주변의 타민족을 포용하여 형성된 오늘날의 위구르족을 태동케 하는데 이슬람은 사상적 통일과 결집된 민족적 정체성의 기틀을 다지게 했다. 이 결집된 정체성으로 인해 뚜렷한 민족적 지도자의 리더십이 부재하는 오늘날에도 위구르족은 곧 날 때부터 무슬림이라는 등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개종은 민족을 배반하는 부도덕한 행위로 심각한 위기감과 도전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신장 이슬람권과 위구르족 선교의 중요성
신장은 중국 내지의 회족을 포함하여 신장, 중앙아시아 5개국, 중동과 팔레스타인으로 이어지는 이슬람축의 주요 관문 지역에 위치하는 지리적 중요성이 크다. 육상 실크로드가 신장을 거치면서 세 갈래로 나누어지는데 이것은 신장이 그만큼 실크로드 선상에서 교류가 활발한 중추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국이 개방 정책을 실시한 이래 신장의 독립적 성향을 경계하기 위한 중앙아시아와의 정치적 협력의 필요성과 중앙아시아의 중국으로부터의 경제적 협력의 상호 필요에 의해서 쌍방 간의 정치, 경제적 교류는 갈수록 활기를 띄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카자흐스탄, 키르키즈스탄 그리고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온 젊은 유학생들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중국어를 배워 무역업에 종사하기 원하는 것이다. 마치 고대의 활발한 동서 교류를 재현해 가는듯한 감동을 느끼게 한다. 최근 중앙아시아 선교의 문이 위축되어 가는 현상과는 대조적으로 여기서는 가만히 앉아서 중앙아시아 디아스포라들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러시아어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일군들이 필요하다. 그들은 중국인이 아니므로 외국인 대 외국인 신분으로 더욱 소신 있는 사역을 할 수 있다고 본다.“물류가 통하는 곳에는 복음도 흐른다.”고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중앙아시아의 선교도 시대 흐름을 주관하셔서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이루어 가시는 것이다.

 

위구르족을 비롯해서 헌신된 신장 투르크민족 그리스도인들은 중앙아시아 선교의 자원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별히 위구르어는 중앙아시아와 터키까지 언어상 교차 부분이 광대하다. 신장과 중앙아시아를 포괄하는 선교에서 위구르어는 선교적 언어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신장과 중앙아시아 민족들 간의 문화, 종교, 혈연적 친밀감은 굳이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여주는 이슬람의 동진과 복음의 서진이라는 운동력이 충돌 대립되어 서로간의 양보 불가한 영적 중요성과 중국교회를 통한 중앙아시아로의 복음의 서진을 위해서 빠질 수 없는 연결고리라는 점에서 신장의 복음화는 그 중요성이 크다 할 수 있다. 






 

정바울 | 중국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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