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만큼 교육열이 높은 민족도 드물다. 최근에는 기러기 아빠로 상징되는 조기 유학 붐까지 겹쳐 하나의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칭다오(靑島) 등 중국의 대도시 한인 사회를 보면 오직 자녀교육을 위해 중국에 온 어머니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한국인들의 자녀 교육열이 그만큼 높다는 반증이다.
이것은 한국인 선교사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몇 년 전 미국 LA를 방문했을 때 그 곳 한인교회 목사님으로부터 LA에 천여 명의 선교사들이 안식년이나 학위과정 이수 등의 명목으로 거주하고 있는데 그 태반이 사실은 자녀 교육 때문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숫자가 다소 과장되었겠지만 선교지에서 한창 일하고 있어야 할 4,50대 중견 선교사들의 발이 자녀교육 문제로 선교지가 아닌 곳에 묶여있다니, 얼마나 큰 자원낭비인가? 교육문제가 현재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최대의 과제가 되고 있듯이 한국인 선교사들에게 있어서도 자녀교육 문제가 이처럼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와 관련하여 평소 느낀 바를 몇 가지 나누고자 한다.
교육열도 '과유불급(過猶不及)'
교육열도 지나치면 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국 사회는 예부터 교육을 중시하여 부모들은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고, 또 그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그러나 교육열이 너무 지나칠 때 자칫 개인과 가정은 물론 사회 전반에 문제를 야기 시킬 수 있기 때문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기러기 아빠 문제이다. 부부간의 스킨쉽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고, 아빠의 존재와 사랑이 절실한 유,소년시기에 가족이 떨어져 사는 이유로 받게 되는 가족 구성원의 정서적 상처는 때로 파국을 부를 정도로 심각하다. 자녀들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가정이 파괴되면서 자신들은 물론 자녀들의 미래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결과를 낳게 된다.
마찬가지로 선교사들도 지나치게 자녀교육 문제에 매달릴 경우 선교 사역 자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무엇보다 선교비의 상당 부분이 자녀 교육비로 들어감에 따라 상대적으로 선교 사역이 위축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만큼 선교비 모금에 시간과 정력을 쏟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내가 아는 한 선교사님은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두 자녀의 등록금 모금을 위해 1년에 두 달은 한국에 나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보다 더 심하면 자녀교육 때문에 선교지를 떠나 미국 같은 곳에 정착을 꾀하게 되는데 그 선교적 손실이 보통이 아니다. 이 경우 선교사의 나이가 사십 후반에서 오십 초반정도가 되어 자녀교육문제만 아니면 앞으로 15년에서 20년은 선교지에서 왕성하게 일할 수 있었을 텐데 그 선교적 손실이 얼마나 크며, 선교사 개인이나 자녀들이 느끼는 자괴감은 또 얼마나 크겠는가?
구분되어야 할 선교사의 삶의 우선순위
선교사의 삶의 우선순위는 일반인의 그것과는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일반 가정의 경우 가정의 일차적인 목적이 자녀를 건실하게 키우는 데 있으므로 거기에 정성을 기울이는 것은 크게 도를 넘지 않는 한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선교사의 삶의 우선순위는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부른 주인과 그 주인이 우리를 부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젊은 사역자 디모데에게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찌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 2:3,4)'라고 권면하였다. 선교사의 삶의 우선순위에 대하여 이보다 더 분명한 언급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바울은 계속해서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딤후 2:5)' 라고 부연하면서 바울은 우리 선교사들에게 있어서 이 권면이 단순한 개인적 권면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주님의 명령을 평생 따르신 중국선교의 선배 선교사는 바로 허드슨 테일러이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중국선교에 부름 받은 후 약혼녀가 이 일에 끝내 동의하지 않자 그녀와 결별하였으며, 중국에서 만나 결혼한 아내 마리아마저도 33세에 아들 노엘을 낳은 지 일주일 만에 그의 곁을 떠났다. 그뿐 아니라 가장 사랑하던 맏딸 그레이시의 죽음과 아들 사무엘의 죽음도 지켜보아야 했다. 또한 그는 내지선교를 위해 오랫동안 가정을 돌보지 못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고난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1900년에 있었던 의화단의 난 때에는 79명의 내지회 선교사들이 희생되는 참극을 맛보아야만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고난 가운데서도 그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면한 말씀에 의지하여 52년 사명의 길을 완주하였던 것이다.
허드슨 테일러는 임종 직전에 다음과 같은 고백을 했다고 한다. '나는 지금 읽지도, 생각하지도, 심지어 기도하지도 못 하지만 아직도 주님을 의뢰할 수는 있네. 누가 안식을 말했던가? 안식은 하늘에나 있는 것을. 아버지의 일을 하는 내게 땅 위에 무슨 안식 있으리. 이 땅에 나를 보내시고, 이 땅에서 안식의 날을 소망하게 하시며, 그 날까지 당신의 일을 맡겨 주신 그 분. 그분은 내게 너무나도 큰 은혜를 주셨네. 일할 수 있는 은혜, 고난을 이길 수 있는 은혜를. 그러나 안식의 은혜는 아직 아니니, 안식은 하늘에나 있는 것을..' 그는 이처럼 마지막 임종의 순간까지 하나님의 좋은 군사로서 충성을 다했다.
다시 디모데후서의 말씀을 살펴보자.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딤후2:6)' 이 말씀은 앞서 언급된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라는 말씀과 연결하여 생각하면 우리를 복음의 군사로 모집한 하나님께서 우리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실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분이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주님께서는 당연히 우리 자녀들의 외국인 학교 등록금이나 대학 등록금을 주셔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치 아니하고, 생선과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을 먹던 애굽 시절을 그리워하던 것과 같기 때문이다. 문제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음식에 길들여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일용할 양식에 감사
지금 한국 선교사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고, 주어진 여건을 십분 활용하여 현실을 극복해 가는 '헝그리 정신' 이 요청된다 하겠다. 헝그리 정신을 자녀교육 문제에 적용하면 이런 것이다. 가령 자녀를 외국인 학교에 보내려고 무리하게 모금 활동을 하는 것보다 일반 중국인 학교에 보내고, 모든 재정을 주님께 의뢰하는 선교사 가정이라, 실력과 하나님 외에는 기댈 것이 없다는 사실을 주지시켜 어릴 적부터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키워주고, 명문대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장학금 주는 곳이면 어디든 감사한 마음으로 가고, 대학을 본인이 아르바이트해서 다니도록 하는 것 등이다. 한국 선교사들에게 바로 이러한 정신이 요청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스스로 있는 자' 라고 말씀하셨다. 이 하나님의 이름에 내포되어 있는 자립심이나 개척정신은 인간이 발현해야 할 중요한 하나님의 형상이다. 위에서 언급한 헝그리 정신이란 바로 이 정신을 말하는 것으로 한국 선교사들이 이러한 자세로 자녀교육 문제에 대처한다면 사역은 사역대로, 자녀교육 문제는 자녀교육 문제대로 좋은 열매를 맺을 것으로 확신한다.
이요한 | 서울중국신학원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