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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6.28 통권 102호     필자 : 바울 프린트   이메일 
[특집] - 특집/ 선교사명과 문화사명
복음과 문화


저우용젠(周永健)선생은 목회자세미나에서 '신생명(新生命), 신단체(
新團體), 신세계(新世界)'라는 말로 복음의 완전성을 표현하였다. 나는 복음의 개인적 측면, 사회적 측면과 세계적 측면을 함께 언급한 그 견해에 매우 동감한다. 과거 복음주의 교회는󰡐사회 복음󰡑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고, 복음의 개인적 측면에만 치중된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복음의 핵심도 인간의 원죄, 주 예수의 구속하심, 십자가에 못 박히심, 부활, 영생 등이었다. 개인적인 측면으로 복음을 이해하고 전파하는 것은 그리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복음의 사회 및 세계적인 측면의 의의를 소홀하였던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1. 현상분석
1) 교회 : 선교사명과 문화사명의 이원화
기독교인의 사명을 언급할 때, 우리는 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두 가지 사명인 선교의 사명과 문화적 사명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곧이어 어느 사명이 더 중요한지를 묻는다. 이것은 복음의 완전성을 분리할 뿐 아니라, 어리석고 편협한 질문이다. 만약 선교사명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목회자가 있다면, 그가 소속된 교회는 복음전파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고, 교회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는 소홀하게 될 것이다. 버스요금 인상이 지역주민들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앞장서서 관심을 가지거나, 교통사고로 다친 이웃을 돌보기 위해 시간을 내지도 않을 것이다. 이러한 지역 사회에 대한 관심이 복음을 전할 시간을 빼앗는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런 방향으로 교회의 사역을 이끌어 나간다면, 교회는 문화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지역사회와 동떨어지게 되고, 이웃과 상관없는 단순한󰡐전도 기구󰡑가 될 것이다.

 

나는 사람의 영과 혼과 육이 나뉠 수 없는 것처럼 복음도 완전한 것이라고 본다. 사람을 이등분 혹은 삼등분하는 신학은 복음사명도 분리할 것이다. 복음사명은 개인적인 측면을 포함하지만, 사회 및 세계적 측면 또한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선교사명과 문화사명은 교회가 동시에 담당해야하는 의무이다. 

 

사명의 분리는 교회 중에 또 다른 파행적 현상들을 출현하게 만든다. 우리는 개인의 영혼을 위한 중보기도는 하면서, 군왕이나 위정자들을 위한 중보기도는 거의 하지 않는다.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세상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것에 치중하는 것을 질책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셨는지를 설명하지 못하고, 전도서에서 '먹고 마시는 기쁨'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한 의미를 해석할 줄도 모른다. 우리는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내면의 평안을 구하도록 권하면서, 도시의 평화를 위해 간구할 줄은 모른다. 생명의 위기를 맞은 사람에게 구원의 소식을 전할 줄만 알았지, 홍콩이 97년 반환 문제로 요동치고 있을 때, 홍콩이란 도시를 향해 어떤 소식을 전해야할지 몰랐다. 교회는 문화사명을 감당할 때, 사람을 분리하고 복음사명을 분리하는 이러한 현상들을 직시해야 한다.   

2) 사회 : 문화 공백과 문화의 '주류'
중국의 전통문화는 5․4운동부터 오늘날까지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문제는 '공자의 유교사상을 타도하자'는 구호 뒤에, 윤리나 도덕관을 담당할만한 온전한 이론적 구조가 제시되지 못하여, 도덕적 공백이라는 문화 공백이 출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홍콩은 줄곧 서양문화의 영향을 받아왔다. 그러나 프란시스 쉐퍼(Francis Sehaeffer)는 서양문화가 이미 '탈기독교사회(post-christian era)'로 진입했고, 기독교사상 및 문화는 더 이상 주류 문화가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성윤리의 경우, 현재 주류를 이루는 이론은 과학적 인문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성경 대신 생리학 및 심리학이 이성교제의 이론적 기초 및 행위의 지표가 되고 있다. 서양문화는 더 이상 문화 공백을 메울 수 없다. 

문화 공백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대중문화가 주류 문화가 된다. 사상의 흐름을 독점하는 것은 고매하고 덕망 높은 학자가 아니라, 한 차례씩 이어가는 단발적인 스타들이다. 사이조 히데키(Hideki Saijo, 일본가수), 콘도 마사히코(Masahiko kondo, 일본가수), 아키나 나카모리(Nakamori akina, 일본가수), 알란 탐, 장궈룽(張國榮), 장쉬에여우(張學友) 등……. 그들에게 완벽한 사상이라든가 철학은 없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문화의 주류 및 리더가 된 것이다. 그들의 노래와 말이 대중이 암송하는󰡐명언󰡑이 되었고, 그들의 의상과 화장 및 생활방식이 젊은이들이 맹목적으로 따르는 스타일이 되고, 그들의 성공신화가 청소년들에게 인생의 '목표'이자 '희망'이 되고 있다.

2. 복음과 문화의 상호작용
복음의 개인적 영향력에 대해서는 거듭 강조해야 하겠지만, 복음이 문화에 미치는 문화적 영향력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문화적 영향력은 시발점 및 중점이 약간 다를 뿐, 모든 사람이 각기 담당해야할 몫이 있다. 우리는 복음과 문화의 상호작용을 3가지 측면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생활적 측면

단체 섬기기 : 교회가 신도들의 이웃에 대한 개별적인 관심을 통하여 문화적 영향력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면, 이제 그 문화적 영향력의 주체는 신도시 속의 지역사회 교회로 점차 옮겨가고 있다. 이 교회들은 여러 형식의 봉사 즉, 청소년활동, 유아교육, 노인복지, 도서센터 등의 지역사회 속의 이웃들을 묵묵히 섬기고 있다. 이 교회들은 문화에 대해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하지만, 사회 기층의 사상 형태 및 생활방식을 조용히 형성해 가고 있다. 

단체 대항하기 : 존 스토트(John Stott)는 기독교인이 문화에 대항해야할 사명을 제기했다. 신도들이 성경의 기초위에서 세속적인 문화와 대항할 수 있는 문화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 대항은 단순히 이론 및 공론에 근거를 둘 수 없다. 핵심은 주님의 사람들이 함께 응집하여 자신이 믿고 견지하는 대로 생활해 나가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 속에 살면서 삶으로 간증하는 ‘대항’이다. 스티븐 모트(Stephen Mott)는 이 관념을 논리적으로 표현했고, 짐 왈리스(Jim Wallis)와 고든 코스비(Gordon Cosby) 등은 교회를 사회에 영향력이 있는 대항 단체로 만들기 위해 힘썼다. 그리스도에 속한 이 단체는 집단 내부를 위해 건립한 단체일 뿐 아니라, 세상 밖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집단이다. 교회는 개인 생활적 측면을 통해 사회에 영향력을 줄 수도 있고, 지역사회 내의 교회가 서로 연합하여 영향력 있는 대항단체를 구성할 수도 있다. 

직장 : 그리스도인이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곳이 직장이다. 사람들은 일생동안 약 10만 시간 이상을 일하면서 보낸다. 우리가 교회나 단체, 주일학교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최소 10배가 많다. 따라서 우리는 신도들로 하여금 직장 내에서의 봉사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도록 가르치고, 더 나아가 신앙과 일을 어떻게 결합해야 하는지 지도해야 한다. 직업에 충실하고 성경의 원칙을 지키는 기독교인은 학교, 공장, 병원, 방송국, 법정 혹은 술집을 막론하고 어디서든 동료 혹은 상사에게 영향력을 발휘한다. 모든 업종이 사회문화 속에서 그 나름대로 독특한 역할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바울과 베드로도 서신 중에 초대교회 성도들을 대상으로 직장에서 어떻게 직분을 다해야 하는지, 상사와 부하직원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다양한 제도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늘 가르치고 있다. 오늘날 우리도 역시 신도들에게는 더욱 투철한 직업관과 직업윤리관을 심어주고, 아울러 직장 안에서의 그들의 섬김에 더 많은 격려와 관심을 보내야 한다.

2) 사상적 측면
문화와의 싸움은 기본적으로 사상적 싸움이다. 특히 문화적 도덕적 공백 속에 대중문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오늘날, 문화는 사상의 척도이다. 만약 우리가 이런 사상적 측면에서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면 반드시 주의 깊게 바라보아야 할 사람들이 바로 연구자, 교사, 작가, 출판가, 대중문화 종사자들이다. 오늘날 교회는 이런 방면의 인재 육성과 지원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못하다. 일반 신학대학은 목회자 배양에 너무 편중되어 있다. 복음과 문화의 관계, 현대사상 및 문화의 분석, 문화충격에 대한 기독교의 대응 등의 커리큘럼에는 소홀하다. 또 일반 교회가 설교 및 주일학교의 가르침을 통해 문화현상에 대해 사상적 의견을 제시하는 일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신도가 사명감을 가지고 신문방송계 및 출판계에 입문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오늘날 교회가 출판하는 간행물들은 여전히 번역 위주이다. 교회는 전임으로 학술 연구나 저작활동을 하는 사람을 육성하거나 지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상술한 바와 같은 문화전쟁터에서 후퇴만 한다면, 우리의 전도 사명은 직격탄을 맞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청소년 사역의 경우, 청소년 세대는 이미 대중문화의 포로가 되어버렸다. 그들의 사상, 언어, 가치관, 의복, 헤어스타일, 생활방식 모두가 그들이 또 다른 세계에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교회의 현재 프로그램 및 단체 스타일, 전도회 혹은 서적을 통한 정보는 그들에게 전혀 맞지 않으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그들의 세계로 들어가야 할지 알지 못하며, 그들과 대화하는 법도 알지 못한다. 여기에서 가장 기초적인 첫걸음은 그들만의 세계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고, 한걸음 더 나아가 시대적 조류의 방향을 틀고, 새로운 조류를 형성하고 이끌어가야 할 것이다. 역사는 과거 많은 기독교인이 문학, 철학, 음악 등 사상 및 창작영역에서 불멸의 자취를 남겼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3) 제도적 측면
문화와의 싸움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으로 제도적 측면이 남아있다. 이것은 정치참여, 여론, 침묵시위, 집회 및 압력단체까지 포괄한다. 문화와 제도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홍콩정부가 추진하는 문오활동(文娛活動)은 바로 도시행정 내의 소수가 그들의 전권으로 제정한 것이다. 홍콩의 교육제도는 사회 전체의 문화 방향에 영향을 준다. 홍콩의 출판조례, 방송검열조례가 신문, 잡지, 영화, TV의 성적 폭력성 척도를 결정한다. 이에 기독교인들은 여러 가지 제도권 속으로 들어가 정책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어야 한다. 제도권 내에서 제도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훈련되고 은사 있는 신도들의 정치 참여, 사회정책 결정 참여를 고무해야 한다.

또 다른 수단은 제도권 밖에서 제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입법부나 행정부 혹은 기본 법안 위원회나 자문위원회 등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여론형성이나 합법적인 사회행동을 통해 시민 개개인이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는 방법이 있다.  교회는 이러한 사회적 양심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야한다. 과거 몇 년 간, 기독교인은 버스요금인상, 동구(東歐)병원, 동성연애법안, 음란 서적(잡지) 등 사회이슈에 있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며, 크건 작건 관련제도에 영향을 미쳤다. 현 정치계에도 소수 기독교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감사하며 기도해야 할 것이다. 사상은 문화의 근거이다. 또 사회문화의 유지 및 발전은 건전한 제도의 바탕위에서 가능하다. 따라서 문화와의 싸움은 개인이나 생활이라는 단면적 싸움이 아니다. 3가지 측면을 아울러 고려해야 한다. 홍콩의 기독교인들은 각기 은사대로 다양한 방면에서 힘을 모아 문화적 사명을 분담해야 한다.


3. 복음과 문화의 몇 가지 교류양식
나는 문화에 대한 복음의 영향을 살펴보다가 다음과 같은 4가지 형태가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다. 이 4가지 양식은 상호 배척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며, 그 무엇도 생략할 수 없는 것이다.

1) 보수
현대문화 중에서 복음과 관련되거나 충돌하고 있는 문제를 찾아낸 후 해답을 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 한 토론회에서는 조상제사 문제로 토론을 벌였다. 제사와 기독교 신앙 사이의 충돌은 기독교가 중국에 들어온 이래 늘 관심이 집중되어 오던 문화적 문제이다. 또 다른 화제는 교안(敎案)의 문제이다. 교회옹호자들은 기독교가 중국 문화 속에서 이루어낸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영향을 강조한다. 학교 설립, 출판, 사회봉사 등등. 이러한 각도에서 문화 문제를 다루는 것은 주로 교회를 보호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이런 정도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2) 대립

이 스타일은 주로 존 스토트 및󰡐로잔언약󰡑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사회문화 속에 떠오르고 있는 일부 현상들에 대한 반성과 적절한 대응을 핵심으로 한다. 예를 들면 서양 및 홍콩에 소비열풍이 불고 생활이 호화스러워졌는데, 그 배후에는 물질주의 및 쾌락주의 가치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와 대립하는 입장에서, 검소한 생활 이론 및 실천 양식을 제안한다. 또한 선정적인 문화의 출현에 대해서도 입장을 표명하고, 낙태가 하나의 시대 풍조로 변하는 것에 대하여, 생명가치 존중을 이야기해야 한다. 도시의 심각한 환경오염에 대해 의견을 내놓는 것 등이다. 이것은 비교적 수동적이고 상대적인 방식이다. 따라서 시종일관 일부 문제들과 더불어 함께 뒹굴고 있다는 것이다.

3) 구속
이것은󰡐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씀을 포괄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무리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생명과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변화가 생기기를 희망한다. 이에 비해󰡐보수󰡑와󰡐대립󰡑형식은 훨씬 안전하다. 왜냐하면 시종 자신의 영역과 진영 속에서 상대방과 대립하고 싸우고, 일단 싸우기 시작하면 같은 편끼리 힘을 모아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무리 속으로 직접 뛰어드는 것이다. 사람들 속에서 많은 제한을 받게 마련이다. 구속의 실전은 매우 힘겹다. 정치참여를 예로 들어 보자. 정치에 참여하는 성도의 제1죄명은󰡐불신자와 함께 멍에를 메는󰡑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은 일찍이 불신자와 함께 메지 않았던가? 그의 상사 느브갓네살은 아주 오만방자하기까지 했었다. 에스더는 궁에서 홀로 싸우지 않았던가? 요셉이 바로의 밑에서 책임을 맡은 것도 결코 쉬워 보이지 않는다. 이들이 불신자의 무리와 그 문화 가운데로 뛰어든 것은 자기의 유익을 구함이 아니었다. 다만 실족치 않기를 간구하며, 그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여 구속의 역사를 일으켰던 것이다.

4) 갱신
마지막으로 갱신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운 수단이라 생각한다. 상술한 방법들은 비교적 단편적이고 불완전하다. 이제 우리는 문화사명을 전반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상술한 방법들은 모두 과거지향적이다. 과거의 문제들에 대한 결론이거나, 혹은 눈앞에 나타난 문제에 대한 반응이다. 나는 홍콩교회가 지금 좀 더 앞을 내다보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년 후, 혹은 수 십 년 후의 미래를 내다보아야 한다. 중국문화의 조류 속에서 기독지식인의 하나로서 중국의 문화와 국가 사회 건설에 어떻게 참여해야 할 것인가? 이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 시대는 더 이상 한 두 사람이 문화를 독점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문화 영역 속에서 누구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오늘날 비기독교인들은 과학 및 기술의 종합 노선을 걷고 있다. 예를 들어 양궈쿠앙(楊國框)의 「중국인의 성격」은 철학, 역사, 문학, 사회학, 심리학 등의 각 분야의 전문 학자들이 한 가지 문제에 대해 공동연구하는 시도를 하였다. 

중국인의 문화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게 될 것인가? 기독교인들은 미래를 설계함에 있어 눈앞의 급한 불을 끄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 된다. 종합적인 안목으로 몇 년, 몇 십 년 앞을 내다보며 투자하고 헌신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학자뿐 아니라 문학가, 역사학자, 사회학자 및 심리학자도 있어야 한다. 자연계시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하나님의 말씀에도 재차 응답해야 한다. 과거 푸인파이(福音派)는 자연계시를 전혀 쓸모없는 것으로 여겼지만, 이제 우리는 가장 근본으로 다시 돌아가 해답을 구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과 성윤리를 토론할 때󰡐간음하지 말라󰡑는 성경말씀에 근거해야 할 것이다. 다만 심리학과 사회학의 각도로 인간의 가치관과 가정관을 긍정하는 데까지 이론적 기초를 확대해야 할 것이다. 사실 하나님의 특별계시는 자연계시와 충돌하지 않는다. 이는 모두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하거나 자연법칙을 통해 진리를 나타내신 것이다. 만약 서로 충돌함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의 신념과 해석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따라서 과학기술과의 교류 및 결합은 문화 갱신의 사명을 담당하면서 반드시 수행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중국 문화 발전을 전반적으로 살펴보았다. 이 문화공백세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문화사명은 특별히 도전적이다. 모두가 복음의 사명을 더 이상 분리하려고 하지 말고 마음과 힘을 합쳐 그 맡은 바 직분을 따라 다각도의 측면에서, 다양한 모양으로 문화에 대한 복음의 영향력을 발휘하길 희망한다. 


바울 | 중국 현지 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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