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첫 번째 겨울을 맞을 때의 일입니다. 날씨가 추워지자 사람들은 집집마다 대파를 사서 햇볕에 말리고 있었습니다. 이곳, 11월 초순이면 우리나라의 한겨울 분위기가 되지요. 영하 30℃를 오르내리는 첫 겨울을 맞는 나는 만주 벌판 추위에 대한 공포심을 앞세우고 있었는데, 혹한에서 살아 남으려면 저들이 하는대로 따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골목에 나가 조랑말 수레에 가득 실린 대파를 엄청나게 많이 사서 저울에 달았습니다. 중국에서는 힘든 부엌일은 대부분 남편들 몫입니다. 파를 사던 날, 시장에 여자는 저 혼자였습니다. 아무튼 긴 겨울 6개월 동안 먹을 파를 사서 베란다에 펼쳐놓고 며칠 지나고 나니, 이번에는 중국인들이 배추를 사다 그늘에서 말리고 있었습니다. 나도 그대로 따라 했지요.

그들은 배들하게 말린 배추를 아구리가 넓은 독에다 넣고 소금물에 절여 두었다가 겨울 내내 조금씩 꺼내어 조리해 먹는다고 하는데, 식생활이 다른 나는 그것까지는 따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배추를 베란다 구석에 두었더니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 하며 파리가 생겨났습니다. 처음엔 배추에서 생겨난 파리인줄 몰랐지요. 그냥, 중국에는 겨울에도 파리가 있나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조그만 파리 한 마리가 방안을 맴돌며 어찌나 성가시게 구는지, 나는 그 파리를 잡으려고 온갖 무기(?)를 동원해 전쟁을 치뤘지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놈이 밤에는 조용히 있다가 날만 밝으면 나를 졸졸 따라 다니는 꼴이 꼭 우리 막내 어렸을 때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파리에다 막내 이름을 붙여 불렀습니다. 그러고 나니 왠지 그 파리에게 정이 갔습니다. 비록 파리지만 생명체가 나와 같이 있다는게 위안이 되기도 하고요. 그때 남편이 선교여행 중이어서 혼자 몹시 적적해 있었거든요.

이국에 살다보면 온종일 있어도 전화 한 통, 내방객 한 명 없는 날이 다반사입니다. 하루 종일 말 한 마디 안하고 보낼 때도 있고, 또 그 좋아하던 음악도 처음엔 듣지 못했습니다. 음악이 나오면 한국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져서요. 처음 중국에 발을 디뎌놓고 울지 않으려고 매일매일 입을 얼마나 앙 다물었던지요.

그해 겨울 이후로 나는 배추나 파를 사 재워놓는 일 따윈 하지 않습니다. 이곳에서도 겨울에 싱싱한 채소와 과일을 얼마든지 살 수 있으니까요. 빙판인 겨울 거리를 조심조심 걸어나가 보면 채소 장수들이 리어카에 상치, 오이 같은 한여름 채소를 싣고, 그 위에 아주 두툼한 솜이불을 덮어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꽁꽁 얼어붙은 풋고추 등 솜이불 밑의 내용물을 하나 달랑 올려놓곤, 눈사람만큼이나 두텁게 옷을 입고 영하 30~40℃의 추위를 견뎌내고 있지요. 그 옆에서는 길바닥의 비닐 위에 쭈쭈바 같은 얼음과자를 펴놓고 팔고 있기도 한데, 그 추위에도 얼음과자를 사서 먹는 사람들이 중국인들입니다.

가도가도 바다를 볼 수 없는 깊숙한 육지 한 가운데서 싱싱한 조개류나 해물을 아주 싼 값에 살 수 있고, 혹한의 추위에도 신선한 채소와 갓 딴 과일들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곳,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동시에 다 있는 곳이 중국이기도 합니다.


전찬미/중국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