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효유(357-1402)는 명(眀)의 홍무제(洪武帝:1368-1398)와 건문제(建文帝:1399-1402) 당시 활동한 유명한 사상가요, 정치가요, 학자이다. 그의 자를 희직(希直) 또는 희고(希古)라 하였고, 호는 손지(遜志), 또는 정학(正學)이라 불렸다.  그는 저장성(浙江省) 닝하이(寧海)사람으로, 대대로 관료를 배출한 집안의 자제로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비교적 좋은 가정환경에서 성장하였다. 그의 아버지 방극근(方克勤)가‘공인의 안’으로 희생을 당하기는 하였지만 학자적 분위기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3세 때부터 숫자를 헤아렸고, 책읽기를 즐겨하여 6세부터 시를 지었다고 한다. 10세 때부터는 당대의 석학인 송렴(宋濂)에게 학업을 배우고 그 문하에서 제일인자라는 칭송을 받았다. 그는 건문제 때 기용되어 한림원(翰林院)의 한림학사(翰林學士)가 되어 건문제를 보필하여 개혁정치를 실현하려다 영락제(永樂帝)의 즉위조서(卽位詔書) 작성을 거절하여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즉위조서
황제는 나라를 다스리면서 조서를 비롯하여 많은 문서를 내리게 되는데, 그 문서의 많고 적음은 재위연수와 비례하기 마련이다. 여러 문서 가운데 즉위조서는 황제의 즉위를 알리는 문서이다. 즉위조서는 국내용과 국외용(주변 여러 나라에 알리는)이 있다. 명대 황제 문서의 머리말에는“봉천승운황제□왈(奉天承運皇帝□曰)”이라 기록되어 있는 특징이 있다. 문서의 성격에 따라 조서(詔書)에는“봉천승운황제조왈(奉天承運皇帝詔曰)”, 제서(制書)에는“봉천승운황제제왈(奉天承運皇帝制曰)”이라 표현했다. 

“봉천승운(奉天承運:하늘을 받들어 명운을 잇는다)”이라는 표현은 홍무제가 즉위하면서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여 명청(眀淸)시대에 사용된 용어이다. 원대(元代)에는“상천권명(上天眷命)”, 오왕(吳王)시대에는‘오왕영지(吳王令旨)’라 하였다. 황제가 내리는 수많은 조서들은 실은 한림원에서 기초하였다. 그런데 만약 조서가 잘못 작성될 경우에는 작성자에게 책임이 돌아가기 때문에 작성자는 누구보다 큰 부담감을 가졌다고 한다. 조서 문제로 큰 화를 입은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방효유이다. 그는 건문제를 도와 개혁정치를 실현하려다 영락제의 즉위조서 작성을 거절하여 희생되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중국에서도 연좌제(緣坐制)는 무시무시한 형벌이다. 반역을 하거나, 왕권에 대항하면 3족(부모·형제·처자 또는 친가·외가·처가), 9족(9대에 걸친 직계친족 또는 부계 4친족+모계 3친족+처가 2친족)이 참혹한 죽음을 면하기 어려웠다. 여기에 10족이라 해서 죄인의 스승이나 문하생을 포함하기도 했다.

건문신정(建文新政)과 정난(靖難)의 변(變)
명 왕조를 세운 홍무제(주원장)의 독재 권력은 최고에 이르렀다. 이갑제(里甲制)를 기초로 한 통치기구는 완비되었으며, 정치, 군사의 정권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부인 마황후(馬皇后)와 황태자를 잃은 후, 오로지 제국의 안전을 위해 힘썼던 홍무제는 1398년(홍무 31년)에 71세로 생애를 마감하게 된다. 홍무제 서거 6일 후에 태조의 유조에 따라 황태손 주윤문(朱允炆)이 제2대 황제로 즉위하였으니 이가 곧 혜제(惠帝) 건문제(1399-1402)이다. 당시 22세의 젊은 나이에 제위에 오른 건문제는 어릴 적부터 왕실에서 모범적으로 유가사상 교육을 받아왔다. 그는 학문을 좋아하며 문학적 재능도 있었으나, 한편 신경이 예민하고 여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평가되고 있다. 

건문제는 4년간의 통치 기간에 내란을 진압하여 왕조의 기초를 새롭게 다지고, 북쪽으로 후퇴하였던 원(元：1206-1368)의 잔존세력을 격퇴시켰다. 그는 태조 홍무제와는 달리 독재성을 버리고 대신들의 의견을 수렴하였다. 그는 조정의 안정을 꾀하면서 인의를 바탕으로 정치를 개혁해 나갔는데, 역사학자들은 이것을‘건문신정’이라고 부른다. 건문제는 법치(法治)보다 덕치(德治)를 우선순위에 놓는 이른바 덕치주의(德治主義)에 입각하여‘관인(寬仁)’의 정책을 폈다. 그 결과 전국의 죄수들이 예전보다 3분의 2나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는 주현(州縣)을 통합하여 현실에 맞는 지방제도를 실시하였고, 관제(官制)를 개편하여 간소화하였으며, 중세(重稅)에 시달리고 있던 장쑤성(江苏省)과 저장성(浙江省) 일대의 농민들의 세금을 줄이는 개혁을 시행하였다. 토지 겸병(兼竝)을 막고 사회 안정을 꾀하기 위해 정전제(丁田制)를 추진하였으나 많은 제한사항으로 인해 결국 정전제는 실현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젊은 황제의 이러한 문화적, 정신적, 기술적인 업적은 후대에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그의 측근이 되어 정치의 보좌를 담당했던 인물들은 과거(科擧)출신 문관들인 황자징(黃子澄), 제태(齊泰), 그리고 송렴(宋濂)의 제자인 방효유 등이었다. 이들은 모두 젊고 예리한 관료들이었으나 정치에 대한 경험은 부족하였다. 건문제는 즉위 초부터 홍무제가 제국의 방위를 위해 각지에 분봉(分封)해 놓은 번왕(藩王)들의 세력이 걱정거리가 되었다. 특히 북평에 강력한 군대를 거느리고 있는 숙부 연왕(燕王: 훗날의 영락제)이 큰 걸림돌이었다. 결국 건문제는 황자징 등의 의견을 수렴해 제왕의 세력을 없애고 삭감하는 제왕삭번(諸王削藩) 정책을 취하게 된다. 

연왕의 세력을 꺾기 위해서는 주변에 있는 제왕 곧 주왕, 제왕, 상왕, 대왕, 민왕을 먼저 치되, 그 중에서도 연왕의 친동생인 주왕을 먼저 쳐 연왕의 수족이 될 수 있는 세력들을 절단해 내는 방법을 취하였다. 이리하여 여러 제왕이 폐해지고 유폐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상황 가운데 연왕은 형제들의 구원을 호소하기도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거병(擧兵)하여 남경(南京)에 들어왔다. 그의 거병의 명분은‘청군측지악(淸君側之惡)’으로 당시 조정에서 과격한 정치를 행하는 제태, 황자징 등 황제 측근의 간신을 제거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군대도‘군측의 악(惡)을 깨끗이 청정(淸靖)하는 군사’라 하여‘정난사(靖難師)’라 칭하였다. 이렇게 하여 숙질간에 빚어진 황실내의 다툼이 이른바‘정난의 변(1399-1402)’이다. 이후 연왕은 반란을 일으켜 조카 건문제를 물리치고 1402년에 영락제로 즉위했다. 

정난의 변에서 패배한 건문제는 황궁이 불타고 있을 때 사라져 버렸다. 건문제의 죽음에 관한 내용은『명태종실록』에 다음과 같이 기재하고 있다.“연왕 주체가 인마를 이끌고 궁중으로 쇄도해 들어갈 때, 건문제는 이미 종적을 알 수 없었다. 며칠간의 조사를 거쳐, 최후로 연왕의 병사가 잿더미 속에서 건문제의 시체를 발견한다. 시체는 이미 새카맣게 타있었고, 사지가 온전하지 못했다. 연왕 주체는 비통함을 금치 못하고 시체를 끌어안고 통곡하였다. 너는 왜 하필 이런 짓을 했느냐. 나는 너를 도와주려고 한 것인데.”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일설에는 황궁의 비밀통로를 이용하여 도망쳤다는 주장도 있으며, 이후 학자들 중에서 비밀통로를 찾으려는 노력을 보이기도 하였다.『명사고증』이라는 책에서는“궁중에 통로를 만들어 토성 밖으로 통하게 하였다. 높이가 1장 2척, 넓이가 8척이어서 사람과 말이 지나가기에 충분했다”고 적고 있다. 1978년에는 명나라 황궁의 근처에 해당하는 태평문 안의 공장 신축공사 중에 높이 2미터 50센티미터, 넓이는 2미터정도의 지하통로가 발견되었다 하여 세인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만일 건문제가 도망쳤다면 아마도 이 지하통로를 통해서 도망쳤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영락제가 정화를 동남아, 중동과 아프리카까지 보낸데 대하여도 해외로 도망쳤을지도 모르는 건문제를 수색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면서 건문제의 도피설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방효유의 최후
건문제 원년(1399) 7월 4일 연왕이 거병하여 정난의 변이 일어났다. 1402년 5월에는 강북의 양주까지 진군하여 왔다. 당시 건문제 정권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방효유는 연왕군의 진군을 막기 위하여 연왕에게 할지강화(割地講和)를 제의했다. 그러나 연왕은 할지강화 제의에 응하지 않고 건문제 정권을 비난하며 진군하였다. 이리하여 연왕이 이끈 정난사는 양자강을 넘어 남경 공세가 들어갔다. 1402년 6월 13일에 남경이 함락되고, 이어 방효유를 체포하였다. 그러나 연왕이 북평을 떠나기 전에 참모인 요광효(姚廣孝)가 한 말이 생각났다.“응천부(應天府)에 학문으로 일세를 풍미한 방효유(方孝孺)가 있는데, 그가 굴복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절대 그를 죽여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를 죽인다면 도도하게 이어온 천하 학문의 맥이 끊기게 됩니다. 그를 얻는 것이 곧 천하를 얻는 것이 옵니다.”라면서 그를 결코 죽이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이에 연왕은 방효유를 중용하여 즉위조서를 작성하게 하였다. 당대의 대 학자인 방효유에게 즉위 조서를 기초하게 함으로써 외관을 꾸미려고 하였다. 연왕의 뜻대로만 일이 잘 처리된다면 정난의 변으로 조카의 황위를 찬탈한 연왕은 그 당위성과 정통성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방효유는 상복을 입은 채 대성통곡하며 죽은 선황제를 위해 비통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를 본 연왕은 끓어오르는 노기를 억누르고 다가가 방효유에게“방공(方公), 너무 상심 할 필요가 없소. 나는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을 보필한 것처럼 왕을 보좌하려는 것뿐이오.”라고 하면서 연왕은 옛날 주나라의 주공이 조카 성왕을 도와 선정을 베푼 사실을 들어 자신의 군색한 입장을 변명했다. 그러나 방효유는 신랄하게 반박했다.“그렇다면 성왕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시오이까?”“성왕은 이미 스스로 분사(焚死)했소이다.”라고 연왕이 대답하였다.“성왕이 분사하셨다면 어찌 성왕의 장자를 황제로 옹립하지 않는 것인가요?” 

“그는 아직 나이가 어리며, 나라의 장래를 위해 계승의 법보다는 능력이 있는, 강한 지도력이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오”라고 했다. 방효유가 또 묻기를“그렇다면 성왕의 동생이 대위를 잇도록 하심이 도리가 아니오이까.” 연왕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호전적인 성격대로라면 당장 방효유의 목을 쳤을 것이나 노기를 가라앉히며 회유의 손길을 거듭 내밀었다. “선생께서 즉위의 조칙(詔勅)을 기초해 준다면 앞으로 선생의 가르침을 받아 인의를 토대로 왕도를 정립하고 태평성세를 열도록 노력하겠소.”그러면서 연왕은 지필묵을 방효유 앞에 대령시켰다. 방효유는 다시 한 번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다가 붓을 크게 휘두르며‘연적찬위(燕敵簒位, 연나라 도적이 제위를 찬탈하다)’라는 네 글자를 큼직하게 쓴 뒤에 붓을 팽개치며“차라리 나를 죽이시오. 내 손으로 조칙을 기초하여 선황제께 배역의 죄를 범할 수는 없소.”라고 외쳤다. 

연왕은 호통을 쳤다.“그 입을 닥치지 못하겠느냐.”방효유는 절개 곧은 시선으로 대꾸했다.“내 말이 귀에 거슬리거든 혀를 자르고 입을 찢으시구려. 죽음이 두려워 바른 말을 아끼는 사람은 결코 아니오니.” 연왕은 방효유의 입을 귀밑까지 찢으라는 끔찍한 명령을 내렸다. 참혹한 피의 숙청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방효유를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서 방효유의 일가친척을 모조리 잡아 모두 형장으로 끌고 나와 방효유가 보는 앞에서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살해하였다. 이리하여 방효유의 구족이 살해되었다. 구족을 살해하고도 분을 삭일 수 없었던 연왕은 방효유의 문하생과 친구들을 모두 잡아들여 이를 십족으로 규정하고 목을 베었다. 가장 참혹한 것이 9족을 멸하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10족을 멸한다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이 때 방효유와 연좌돼 참방효유는 이를 뜬눈으로 지켜보면서도 선비의 기개와 굴강한 의분을 가지고 참아내었다. 자고로 가장 엄격한 형벌은 9족을 멸하는 것이었으며 그보다 더 참혹한 형은 없었다. 이 때 참수된 사람이 무려 847명에 이르렀으며, 유배의 길에 오른 사람은 그 수효를 헤아릴 수 없었다고 한다. 부귀와 영화를 마다하고 절개를 굽히지 않았던 방효유 취보문(聚寶門)밖으로 끌려가 책형(磔刑 :사지를 찢어 죽이는 형벌)으로서 최후를 맞았으며,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절명시(絶命詩)가 전해내려 오고 있다.

天降亂離兮 孰知其由(하늘이 이 세상에 난리를 내리시니 어느 누가 그 까닭을 알소냐)
奸臣得計兮 謀國用猶(간신이 흉계로 나라를 농락하니)
忠臣發憤兮 血涙交流(충신은 의분 발하며 피눈물 함께 흘리도다)
以此殉君兮 抑又何求(이로써 임금을 위해 순사하려 하니 이 외에 또 무엇을 구하리오)
嗚呼哀哉兮 庶不我尤(오오 슬프도다. 대저 나의 잘못은 아니거늘)

하늘도 두려워 숨을 죽이고 날짐승도 슬피 울며 날개를 접었다는 그날의 숙청을 두고 후세의 사가들은 이렇게 입을 모았다.“진시황도 잔인했지만 죄인을 다스릴 때는 삼족을 멸했다. 그런데 영락제는 십족을 참수했으니 그 잔인함은 진시황을 능가함이 아니겠는가?” 그의 저서로『손지재집(遜志齋集)』,『방정학선생집(方正學先生集)』등이 전해지고 있다. 청대 광서 17년(1891) 여름에 태주 지부 진휼(陳譎)이 방효유를 기리기 위해 그의 고향 시상팡(溪上坊))에 비를 세운 적이 있으나 오랫동안 훼손되어 있다가 2001년 6월, 방효유 순절 600주년을 맞아 닝하이현 유지들에 의해 시상팡 마을에 높이 3.5m 폭 5m 크기의 방효유 기념비가 세워졌다. 머리에는 유리기와를 올렸고 용과 진주를 장식하였다. 비석면에는 “명유방정학고리(明儒方正学故里)”라는 일곱 자가 크게 새겨져 있으며 두 마리의 용이 조각되어 있다. 방효유는 황제의 믿음과 존중을 받으며 건문제 곁에서 충성을 다 하였으며, 비록 정난의 변에 비참한 말로를 맞았으나, 역사는 그를 유명한 사상가요, 정치가요, 순절(殉節)의 충사(忠士)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전순동 | 본지 집필위원 ․ 충북대학교 역사교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