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jpg) 《史記》〈秦始皇本紀〉에 나오는 말로 중국 진(秦)나라 승상 조고(趙高)가 자신의 권세를 시험해 보고자 진나라 2대 황제 호해(胡亥)에게 사슴(鹿)을 가리켜 말(馬)이라고 한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지금은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마음대로 휘두르거나 모순된 것을 우겨서 끝까지 남을 속이려고 하는 것을 비유한다.
얼마 전 ‘올해의 사자성어’가 발표되었다. 2001년부터 교수신문이 시작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한국의 대표 지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교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후보 성어 가운데 응답수가 가장 높은 성어를 올해의 성어로 선정해 왔다. 2014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지록위마”가 뽑혔다. 학자들의 눈으로 본 한국의 2014년은 통치자의 눈과 귀를 막아 바른 정치를 할 수 없도록 하는 조고(趙高)와 같은 이들이 많은 한 해였다. 교수들은 “指鹿爲馬”를 통해 권력자 주변에서 권력 위의 권력에 아순(阿順)하는 비겁한 인사들을 비판하고 우리 사회에 윗사람에게 용감하게 직언할 수 있는 충직한 일꾼이 부재함을 경계하며 ‘忠’을 잃은 자들의 용렬함을 비교적 소극적인 방법으로 꾸짖었다.
한국은 예로부터 학자들이 관료가 되어 나라를 바르게(政治)하는 일을 하는 선비의 나라, 학자의 나라였다. 한국 정치에 존재하는 학자적인 메커니즘으로 현재도 수많은 학자들이 국회를 비롯한 정계에서 현역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재야인사 역시 학문적 소양을 두루 갖춘 태산과 같은 분들로 정치인들의 자문과 멘토가 되어 정계에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교수들은 후학을 양성하고 일정한 분야의 전문적인 업적을 쌓는 학자들이다. 또한 객관적 입장에서 비판적 시각으로 세태를 파악하고 현실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식견을 지닌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비판은 논리적인 근거가 있으며 설득력이 있으며 파급력 또한 매우 크다. 오리무중(五里霧中), 이합집산(離合集散), 우왕좌왕(右往左往), 거세개탁(擧世皆濁), 당동벌이(黨同伐異), 상화하택(上火下澤), 밀운불우(密雲不雨), 자기기인(自欺欺人), 호질기의(護疾忌醫), 방기곡경(旁逕岐曲), 장두노미(藏頭露尾), 엄이도종(掩耳盜鐘), 도행역시(倒行逆施) 그리고 2014년에 발표된 지록위마(指鹿爲馬)까지 그동안 교수신문을 통해 선정된 올해의 사자성어는 대부분 부정적 의미를 나타내는 성어로 교수들의 사회비판적 시각을 잘 보여준다. 사실 우리 사회는 긴 시간 이처럼 어두웠고 불우했다. 그렇다면 정작 이 사회가 ‘우왕좌왕’하고 ‘도행역시’하는 동안 학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묻고 싶은 이들이 있을 것이다. 홀로 상아탑에 앉아 독야청청하면서 한국 사회의 퇴행을 방기 혹은 유기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물어야 할 것이다. 자성이 없는 비판과 한탄은 회음벽(回音壁)을 돌아 결국 발화자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학계의 불미스러운 일들이 여론에 공개되면서 존경하던 교수님들이 사회불안을 조성하는 주범으로 지목되는 현실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제자들에게는 모범적인 스승으로, 사회에는 책임과 도의를 다하는 지식인으로, 부여된 책임과 의무를 다할 때 권력 앞에 굴복하지 않고 국가와 국민에게 ‘忠’을 다하는 국가 공복들이 배출될 수 있을 것이며 그 누구도 감히 ‘指鹿爲馬’로 세상을 기만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함포고복(含哺鼓腹)’, ‘태평성세(太平聖歲)’, ‘진선진미(盡善盡美)’와 같은 긍정적 의미의 성어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박애양 | 중문학 박사 |